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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tage]'호텔 캘리포니아'처럼 빠져나오지 못 하는…서울시극단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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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완전히 꺼진 칠흑 같은 무대, 관객이 배우의 등장을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있는 순간, 어두운 정적을 깨는, 질주하는 스포츠카의 짜릿한 엔진 굉음이 극의 시작을 알린다. 스포츠카의 굉음에 어울리는 카 오디오의 경쾌한 음악이 더해진다. 이윽고 핀조명이 켜지고 남자 주인공 '트랍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한 색깔의 수트에 선글라스 차림이다. 부와 성공의 상징인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그의 표정에는 여유와 자신감이 넘친다.

[On Stage]'호텔 캘리포니아'처럼 빠져나오지 못 하는…서울시극단 '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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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랍스는 무대를 한 바퀴 돌며 관객들과 여유 있게 눈을 맞추고 미소도 지어 보인다. 굉음과 음악이 계속 이어진다. 트랍스는 흥에 겨워 가속 페달을 더 힘껏 밟는 순간, 굉음이 한껏 고조되는 듯 하다 이내 '쾅!' 소리와 함께 스포츠카가 멈춰선다. 트랍스가 보닛을 열어보니 과열된 엔진에서 피어난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호텔은 빈방이 없고, 트랍스는 판사로 은퇴한 한 신사의 저택에 하룻밤을 신세진다.


서울시극단 '트랩'의 흥미로운 도입 부분이다. 자동차와 호텔을 찾는 주인공이라는 설정에서 전설적인 록밴드 이글스의 명곡 '호텔 캘리포니아' 가사가 연상된다. 호텔 캘리포니아의 주인공은 화려한 호텔에 들어가지만 지배인으로부터 "당신은 영원히 떠나지 못할 것(But you can never leave)"이라는 말을 듣는다. 트랩의 주인공 트랍스 역시 저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저택이 덫(트랩)인 셈이다.


저택의 주인은 트랍스가 스포츠카를 질주하며 무대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무대 중앙의 화려한 테이블에 앉아 트랍스를 지켜본다. 트랍스의 스포츠카가 멈춰서는 순간, 집주인은 '걸려들었구나'라는 듯 씨익 미소를 짓는다.


저택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집주인과 친구들은 트랍스에게 칠리소스 새우, 송아지 간요리, 영계 로스트치킨 등의 고급 요리에 와인까지 융숭하게 대접한다. 트랍스는 향연이라고 외치며 즐거움을 만끽한다. 집주인과 친구들은 파티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모의법정 놀이를 제안한다. 트랍스는 피고 역에 마뜩잖아 하다 이내 호기롭게 받아들인다. 어차피 삶은 게임 같은 것. 승자와 패자로 나뉘고 그동안 승자로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이깟 놀이에서 피고 역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한 태도다. 예상치 못한 자동차 고장으로 계획된 여정이 틀어졌지만 트랍스는 여전히 여유가 넘친다.

[On Stage]'호텔 캘리포니아'처럼 빠져나오지 못 하는…서울시극단 '트랩'

호텔 캘리포니아의 가사는 상징과 은유로 가득하다.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이는 호텔 캘리포니아가 명곡으로 인정받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여러 해석 중 하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허상에 대한 풍자다. 자본주의가 풍요를 가져다줬지만 치열한 경쟁 논리 속에서 인간이 점점 물질화되는 세태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는 것이다. 화려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호텔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체제의 은유인 셈이다.


트랩도 비슷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트랍스는 자신의 스포츠카처럼 출세를 위해 맹목적으로 앞을 향해 달렸다. 피고 트랍스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면서 트랍스는 스포츠카를 몰게 되기까지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특히 모의 법정놀이에서 검사 역을 맡은 '초른'은 계속해서 트랍스의 양심과 죄의식의 문제를 추궁한다. 분위기는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지만 고급 음식과 와인에 도취된 트랍스가 웃으면서 내뱉는 말들은 점점 고해성사에 가까워진다. 트랍스가 자신의 성공의 전모를 모두 털어놓은 뒤 오히려 더욱 기뻐하는 모습에서는 죄의식을 털어낸 고해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트랍스는 세상을 다 가진듯 기분이 좋다며 잠에 빠져든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뒤 깨어난 트랍스가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면서 극은 마무리된다.


출세만을 생각하고 질주하다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뒤늦게 후회하는 트랍스의 모습은 치열한 경쟁사회 속 우리의 모습과 현대인과 닮은 면이 있다. 때로 우리는 극 중 저택이 상징하는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서 우리의 과오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할 때도 있다. 산업화를 추구하다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인류의 현 상황이 그러한 예다.


트랩의 원작은 스위스 출신의 극작가 프리드리히 뒤렌마트(1921~1990)가 쓴 단편소설 '사고(Die Panne)'다. 뒤렌마트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회 구조의 모순을 블랙코미디로 풍자하는 작품을 많이 썼다. 트랩도 블랙코미디 극으로서 매력이 가득하다. 소재는 흥미롭고 이야기 전개는 유쾌하면서 날카롭다. 극 중 배우들이 실제로 먹는 고급 음식과 와인은 미식의 즐거움을 더한다. 극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시종 '시모네'의 라이브 피아노 연주도 극의 매력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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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은 오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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