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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와도 달라지지 않았다”…피해자의 증언[되풀이되는 아동학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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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입 실패 후 더 교묘해져
가족의 방관 더 깊어진 고립감
끝나지 않은 후유증, 이어지는 삶

편집자주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학대는 멈추지 않는다. 제도의 허점은 아이들을 다시 위험 속으로 밀어 넣고 비극은 되풀이된다. 아시아경제는 재학대의 실태, 원인, 해법을 3회에 걸쳐 심층 진단한다
“경찰이 와도 달라지지 않았다”…피해자의 증언[되풀이되는 아동학대]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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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집에 온 순간 내 세상은 한 번 더 무너졌습니다."


아동학대 피해자 권모씨(37)는 중학교 1학년 무렵 이웃의 신고로 경찰이 집에 찾아왔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그는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줄 수 있겠구나'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경찰관은 부모에게 몇 마디를 묻는 데 그쳤고 '별일 없다'는 답을 듣고 자리를 떴다. 권씨에게 학대 사실을 직접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짧았던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고, 그 순간 이후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벽이 세워졌다.


인천 서구 자택 인근에서 만난 권씨는 "경찰은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형식적인 질문 몇 마디로 사건을 마무리했을 뿐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려는 노력은 없었다"며 "결국 피해자는 계속 같은 집에 머물러야 했고 재학대로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보호 체계가 일회성 개입에 그치자 아이의 현실은 오히려 더 취약해졌다는 것이다.


부모는 외부 개입 이후 폭력을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바꿨다. 그는 "누군가 제 비명을 듣고 신고하면 상황만 더 악화할 뿐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지금도 뜨거운 물체에 손이 닿으면 본능적으로 움찔할 뿐 소리를 내지 못하는 습관이 남아 있다.


여러 차례 신고가 이어졌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밖에서는 다정한 부모의 모습으로 행동했지만, 집 안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에도 긴장이 흘렀다. 권씨는 "밖에서 웃다가도 집에 들어가는 순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와도 달라지지 않았다”…피해자의 증언[되풀이되는 아동학대]① 아동학대 피해자 권모씨(37)씨가 지난 22일 인천 서구 자택 인근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에게 학대는 마치 '끊기지 않는 중독'처럼 느껴졌다. 권씨는 "잠시 멈추는 듯 보여도 결국 더 심해졌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그 순간만 멈출 뿐 다시 시작됐다"고 털어놨다. 날이 갈수록 학대의 강도는 높아졌다. 정서적 폭력은 신체적 폭력으로 이어졌고, 위협적인 도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매일 저녁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학대는 권씨를 집 밖으로 내몰았다.


겨울밤은 특히나 잔혹했다. 얇은 옷차림으로 집에서 쫓겨난 권씨는 놀이터 미끄럼틀 안에서 신문지를 덮고 몸을 웅크리거나 공중화장실의 온수로 손발을 녹이며 추위를 버텨야 했다. 그는 "귀와 손가락이 얼얼하게 아팠다"며 "부모가 잠든 새벽이 돼서야 몰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철저히 가려진 학대의 흔적은 바깥세상에 드러나지 않았고 아이는 그 긴 겨울을 홀로 견뎌야 했다.


가족에게도 의지할 곳은 없었다. 한참을 걸어 조부모 집에 도착해도 돌아온 대답은 '네가 알아서 해결해라'뿐이었다. 권씨는 "집안에서도 나는 죄인 같았다"며 "도망칠 곳이 없었고 그냥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학대를 스스로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권씨는 '가난해서 부모가 저럴 거야, 내가 잘못했으니 이런 일이 생긴 거야'라며 고통을 버티기 위해 이유를 만들어냈다고 고백했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아이는 더 깊은 고립으로 빠져들었다.


“경찰이 와도 달라지지 않았다”…피해자의 증언[되풀이되는 아동학대]①

권씨의 몸과 마음엔 여전히 흔적이 남아 있다. 부모의 학대로 생긴 상처는 흉터로 남았고, 그 시절 몸에 밴 기억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그는 "지금도 뜨거운 걸 만지면 비명을 지르지 못한다. 그저 움찔할 뿐"이라며 "어린 시절 몸에 새겨진 반응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권씨는 여전히 공황장애와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지만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그는 "지하철 한 정거장도 못 탔는데, 매일 한 칸씩 연습하다 보니 지금은 눈을 감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했다.


지금도 가장 어려운 질문은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냐'는 것이다. 권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학대는 아이가 살아야 하는 집에서 일어나고 아이에게는 갈 곳이 없다"며 "버텨라, 견디라는 말은 무책하고 잔인하다. 그래서 나는 어떤 위로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의 '2024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재학대 사례는 3896건, 피해 아동은 2962명이었다. 이는 전체 아동학대사례(2만4492건)의 15.9%에 해당한다. 피해 아동 중 1년 이내 다시 학대 피해를 당한 아동은 1737명(8.7%)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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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법이 개정돼 부모라도 아동을 체벌할 권리는 없으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등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112에 신고하고, 아동 양육·지원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129(보건복지상담센터)와 상담하십시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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