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교환 독서'를 할 때 우리 안에 생겨나는 일들

시계아이콘03분 01초 소요
언어변환 뉴스듣기

개성 담긴 기록 나누며 우정 형성
교육 현장서도 활용된 전통적 방식
정보 홍수 속 초점행위 중요성 대두
마음챙김·자아성찰 심화할 기회

[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교환 독서'를 할 때 우리 안에 생겨나는 일들
AD

요즘 청년들 사이에선 '교환 독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교환 독서는 책 한 권을 둘 또는 여러 사람이 차례로 돌려 읽으면서 자유롭게 밑줄도 긋고 행간이나 여백에 메모도 남기며 함께 감상을 나누는 독서 방법이다. 친한 친구 몇이 시작하거나, 소셜미디어로 사람을 모아서 책을 돌려 읽는 식으로 진행된다. 한때 사람들 입에서 흔히 오르내렸던 '취미는 독서'라는 말이 낯설어지고,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어진 시대에 무척 반가운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심코 긋는 밑줄과 끼적여 남기는 메모는 그 책의 내용과 의미를 이해하는 능동적 행위이자, 그 사람의 개성과 취향, 날것의 감각과 생각을 드러내는 내밀한 증거다. 이를 교환하는 일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맺는 행위에 속한다. 어릴 때 친구랑 한 일기장을 돌려쓰면서 우정을 북돋우던 경험과 무척 비슷하다.


교환 독서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이는 학교 독서 교육에서 예전부터 활용해 온 방법으로, 시나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왜 학교에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노르웨이숲)'에서 문해력 연구의 권위자인 데니스 수마라 캐나다 캘거리대 교수는 "문학 읽기가 깊은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초점 행위"라면서, 이를 촉진하는 방법으로 '교환 독서'를 권한다. 교환 독서가 학생들이 성적을 위해 억지로 작품을 읽고 정해진 해석을 받아들이는 수동적 독서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에 깊이 몰입해서 적극적으로 작품과 상호작용하고, 그 의미를 체화하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정보가 넘치는 디지털 사회에서 이런 능동적 의미 이해는 한 인간의 삶에 무척 중요하다. 정보나 지식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상상력과 해석력, 통찰력과 창조력을 우리 안에서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 경험이나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에 대한 즉각적 이해나 직관적 판단을 버리고 다양한 맥락에서 이를 끈질기게 살피면서 집중하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초점 행위란, 어떤 것에 온전히 몰입해 그 의미를 거듭 성찰하는 걸 말한다. 그 사유의 결과가 쌓여 어느 순간 우리 안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이해가 통찰이다. 거꾸로 말해, 통찰을 얻으려면 반드시 초점 행위를 거쳐야 한다. 사람은 대개 자기 직업이나 좋아하는 일에 대해 나름의 통찰을 품고 있는데, 이는 긴 세월에 걸쳐 그 일을 반복하면서, 그 가치와 의미를 성찰하는 초점 행위를 거듭해 온 결과다.


몇 가지 키워드만 입력하면 누구나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묻기만 하면 인공지능(AI)이 곧장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는 시대에 초점 행위는 더욱 중요하다. "정보에 대한 접근이 이해를 보장"하지도 않고, "깊은 통찰을 위한 조건을 창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려면 해석이 필요하고, 해석은 학습된 활동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 나의 몸, 나의 마음에 체화된 의식과 무의식 없이 어떤 해석도 존재할 수 없다.


자기 삶의 세부에서 생겨나는 온갖 일과 사건의 의미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반복적 성찰이 쌓여서 이해와 해석의 토대를 이룩한다. 일은 기계에 맡겨서 자동화할 수 있고, 지식은 AI에 의뢰할 수 있어도, 그 일을 왜 하는지 그 지식이 나에게 무얼 뜻하는지는 오로지 나만 알 수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오랜 탐구가 층층이 겹쳐서 이루어지는 깊은 통찰은 쉽게 얻을 수 없다는 점이다. "깊은 통찰은 사람들과의 관계, 사람들이 만든 사물들과의 관계, 인간 너머 세계와의 관계"를 중층적으로 살피고 해석하는 고된 작업을 거쳐서만 비로소 생겨나는 까닭이다.


더욱이 인생은 한 차례뿐이므로, 일정한 거리를 두어 자기 삶의 맥락을 살피고, 그 의미와 가치를 돌이키는 일은 매우 어렵다. 온갖 종교에서 명상이나 묵상을 통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하는 건 자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살피라고 권면하는 일과 똑같다. 문학을 읽는 것 역시 그런 방법의 하나다.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타인의 감각과 언어, 감정과 생각, 상황과 사건을 받아들여 다른 삶을 살아본다. 이렇듯 타인이 되어 보는 경험은 내 삶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일과 똑같다. 이런 반성적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삶의 의미를 그 근원까지 살피는 깊은 통찰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문학은 혼자 읽을 때도 자연스레 '초점 행위'로 이어진다.


하나의 문학작품을 같이 읽으면서 밑줄과 메모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함께 나누는 교환 독서는 이런 깊은 통찰을 가져오는 초점 행위를 더욱더 촉발한다. 나와 다른 문장에 그은 밑줄, 나와 다른 생각을 담은 메모, 책의 여백에 아무렇게나 그린 문양이나 그림은 내 머릿속에서 다채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다양한 각도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준다. 이는 내 자아를 확장하는 것, 내 안에 갇혀 있는 상상력과 해석력을 해방하는 일이다.


교환 독서는 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그 뜻을 거듭 숙고하는 일이고, 내가 몰랐던 생각을 일깨우고 내게 없던 감각을 자극하는 일이다. 이는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해석을 위한" 공간을 내 안에 만들어 낸다. 자기를 비추어 보는 성찰의 거울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다. 더욱이 문학 작품은 인생이나 사건의 전말을 담고 있다. 문학을 교환해 읽는 일은 삶의 가치를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하고, 사건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에서 되새기도록 만든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사람들은 한 작품이 자기 삶에 온전히 통합되면서 생겨나는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어떤 경험이나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해서 통찰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수마라는 교환 독서를 통해 텍스트를 다시 읽는 일은 "명상과 유사한 형태의 마음 챙김 상태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독자는 문학적 참여를 통해 생겨난 공통 공간에서 새로운 정보와 해석을 계속 수집"하고, 타인의 밑줄이나 메모를 통해 자기가 평소 눈여겨보거나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을 알아차리면서, 이를 바탕으로 자기 삶을 깊이 있게 살피게 된다. 교환 독서는 결국 나를 관조하는 눈을 내 안에 마련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자기를 성찰하는 눈 없이 좋은 삶을 살 수 없다.


AD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6.02.2213:03
    '다주택' 71번 '투기' 31번…李대통령 SNS로 읽는 정책 신호
    '다주택' 71번 '투기' 31번…李대통령 SNS로 읽는 정책 신호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한 달간 X(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부동산 관련 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다주택(다주택자 포함)'으로 71회였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특정 키워드를 반복적으로 꺼내는 것은 그 자체로 정책 방향을 시장에 알리는 신호로 읽힌다. 정부 부동산 정책의 무게 중심이 실거주 목적을 벗어난 투기적 다주택자 규제에 놓여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22일 아시아경제가 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부

  • 26.02.2009:59
    서울 소형 아파트 거래 비중 40% 넘겨…다주택자도 먼저 던진다
    서울 소형 아파트 거래 비중 40% 넘겨…다주택자도 먼저 던진다

    서울 아파트 거래에서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어섰다. 소형 면적 선호 현상에 대출 규제까지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2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전체 서울 아파트 거래 가운데 전용 60㎡ 이하의 거래 비중이 42.8%로 집계됐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비중은 39.9%로 40%를 밑돌았지만 이후 상승세를 그려 지난해 12월엔 44.8%로 4.9%포인트 오르기도 했다. 소

  • 26.02.2008:19
    "유산? 내가 다 쓰고 간다"…"실버타운? 내 돈 쥐고 '보증금 0원' 호텔 살란다"
    "유산? 내가 다 쓰고 간다"…"실버타운? 내 돈 쥐고 '보증금 0원' 호텔 살란다"

    대한민국 상위 1%를 위한 하이엔드 시니어 레지던스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호텔신라·롯데호텔·현대건설 등 대기업들이 잇따라 사업에 뛰어들었고 정부도 2024년 '시니어 레지던스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민간 공급 확대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자금 유동성을 두고 셈법이 복잡하다. 실버타운 특성상 현금 수십억 원을 보증금으로 묶어둬야 하는 기회비용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보증금 없이, 연령 제한

  • 26.02.1815:06
    "세금 무서워" 서울 고가 매물 쏟아지는데…팔리는 건 '15억 이하'
    "세금 무서워" 서울 고가 매물 쏟아지는데…팔리는 건 '15억 이하'

    정부가 '거주 목적 외' 주택 보유에 대한 세제 혜택을 단계적으로 회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서울 아파트 매물이 빠르게 쌓이고 있다. 다만 늘어나는 매물만큼 거래가 따라붙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대출 규제로 매수 여력이 제한된 데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일이 다가올수록 매물이 늘어 가격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관망 심리가 확산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18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일 기준 서

  • 26.02.1807:00
    수도권 집값 상승 지방으로 퍼질까…기대 심리 '쑥'
    수도권 집값 상승 지방으로 퍼질까…기대 심리 '쑥'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주택 가격 상승이 주춤한 가운데 지방 부동산 시장이 점차 살아나고 있다. 주택사업자들이 바라보는 지방 부동산 경기 전망도 큰 폭으로 개선된 것으로 확인됐다. 18일 주택산업연구원이 주택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월 비수도권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전월보다 16.0포인트 상승한 93.3으로 전망됐다. 주택사업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는 기준선인 100보다 여전히 낮은 수치지만 같은

  • 26.02.2015:42
    김윤형 "송영길 100% 전대 출마", 하헌기 "전략공천 해야"
    김윤형 "송영길 100% 전대 출마", 하헌기 "전략공천 해야"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하헌기 더불어민주당 전 부대변인과 김윤형 전 국민의힘 부대변인 모시고 핫이슈 관련해서 얘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소종섭 :민주당 얘기 좀 해볼까요? 송영길

  • 26.02.1915:25
    '젊은 서양인들'이 한국에 몰려온다
    '젊은 서양인들'이 한국에 몰려온다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외국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어느 순간 그렇게 됐다. 서울이 뉴욕의 축소판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많은 외국인은 어디서 왔을까?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의 통계월보에 따르면

  • 26.02.0511:23
    박원석 "전한길, 이석기보다 훨씬 더 위험"
    박원석 "전한길, 이석기보다 훨씬 더 위험"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박원석 전 국회의원(2월4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소종섭의 시사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박원석 전 의원과 함께 여러 가지 이슈들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원석 : 네, 안녕하십니까. 소종섭 : 오늘 장

  • 26.02.0314:25
    장성철 "한동훈의 알파와 오메가는 배지"
    장성철 "한동훈의 알파와 오메가는 배지"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출연 :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2월 2일)※ 기사 내용을 인용할 때는 반드시 '소종섭의 시사쇼'를 명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종섭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과 함께 여러 가지 이슈들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정치, 지난주 토요일부터 오늘 오전까지 9개를 올렸습니다.

  • 26.01.2907:47
    정청래 비판한 김민석, 치열한 두 사람의 '장군멍군'
    정청래 비판한 김민석, 치열한 두 사람의 '장군멍군'

    김민석 국무총리와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군멍군'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올 8월 전당대회를 향한 움직임이다. '8월 전대'는 누가 당 대표가 되느냐를 넘어 여권의 권력 지형을 가르는 의미가 있다. 정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그의 정치적 힘은 지금보다 더 커진다. 여권 내 위상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하다. 2028년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권을 쥐기 때문이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표가 된다면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