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께 서울 중구 을지로3가의 한 골목. 전깃줄과 간판으로 빼곡한 이곳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황서연씨(24)는 술집 앞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씨는 "다니는 학교가 이 근처라 친구랑 자주 놀러 온다"며 "간판도 알록달록하고 가게도 개성이 넘쳐 이국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MZ세대(밀레니얼 세대+Z세대) 사이에서 뉴트로(New+retro) 상권의 인기가 이어지고 있다. 오래된 상권이 새롭게 단장하며 공간의 분위기와 감성을 소비하는 젊은 층에게 '익숙함 속 새로움'을 선사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힙지로'라고 불리는 을지로3가 일대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최근 을지로 상권을 방문하는 발길은 꾸준하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2025년 1분기 중구 을지로동의 점포 수는 2985개로, 전년 동기 대비 53개 더 늘어났다. 올해 5월 을지로동 방문자 수 또한 172만7642명으로, 171만408명이었던 지난해 5월보다 증가했다. 올해 1분기 외식업 매출의 절반 이상이 20대, 30대다.
도심 상권의 흥망성쇠…인기 끄는 뉴트로
인기의 비결은 뉴트로다. 좁은 골목길에는 낡은 인쇄소 건물을 리모델링한 가게가 가득하다. '종합인쇄, 디지털마스타'가 적힌 가게에서는 철판 요리를 팔고, 수제맥주펍 창문에는 'UV 특수인쇄'가 적혀있다. 골목길을 가득 메운 음식점 간판 사이로 전깃줄과 인쇄사, 설비 간판도 쉽게 볼 수 있다. 쌍화차를 파는 다방과 옛날 감성을 그대로 간직한 호프집도 어우러져 있다. 행인들은 '우리나라가 아닌 것 같다'고 외치며 좁은 골목길을 한 줄로 걸어 다녔다.
뉴트로는 도심 상권의 흥망성쇠와 연결돼 있다. 을지로는 1990년대 인쇄업의 전성기에 조성된 인쇄 골목 인근에 골뱅이와 노가리 골목이 생겨났다. 2000년대 들어 인쇄업이 내림세로 들어서자 빈자리에는 카페와 술집이 들어섰다.
또 다른 뉴트로 상권인 성수, 용리단길 역시 오래된 건물에 여러 가게가 들어서며 상권이 만들어졌다. 1990년대 공장지대였던 성수는 폐공장에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며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정체성을 자리매김했다. 대림창고에는 지난해 9월 패션 편집숍이 들어섰고, 올해 초 성수에 국내 처음으로 해외 패션 브랜드 매장도 입점했다. 팝업스토어는 정비소, 공업사 옆에서 열고 닫힌다. 용리단길 또한 1970년대 지어져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는 삼각맨션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있다. 리모델링한 주택, 빌라 1층에는 이국적인 음식점이 들어서 있다.
낡은 상권이 새롭게 살아난 이곳들은 공간의 감성과 분위기를 소비하는 MZ세대의 소비 특성과 맞아떨어졌다. 대학생 이민제씨(23)는 "을지로는 좁은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카페, 술집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며 "올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한다원씨(26)는 "노포, 다방, 세운상가같이 오래된 시설과 신식 카페가 어우러져 있어서 다양한 분위기를 한 곳에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프랜차이즈보다 특성 있는 일반 점포가 많은 점도 개성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과 이어진다. 2025년 1분기를 기준으로 을지로3가 일대 1274개 점포 중 92.6%(1180개)가 일반 점포인 것에 반해 프랜차이즈 점포는 90여개에 불과했다. 용리단길이 위치한 한강로동 또한 5255개 점포 중 93.5%(4916개)가 일반 점포다. 시민 허윤경씨(24)는 "골목골목 다니면서 아기자기한 감성 카페를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채모씨(28)도 "건물들이 재건축, 리모델링해서 고즈넉한 분위기도 있다"며 "퇴근할 때 보면 젊은 사람들이 데이트하러 많이 오는 것 같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사람들이 번듯한 건물이나 빌딩이 있는 강남보다 을지로 노포 등에서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측면이 있다"며 "일상적으로 접하지 못한 레트로함이 고향, 할머니 품 안이라는 감정을 자아내기 때문에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고 찾아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옛스러움+현대 감성의 조화…익선동과 서순라길
조선시대 때 종묘를 순찰하던 순라청의 서쪽에 있는 길. 종묘 정문부터 서쪽 돌담길을 따라 형성된 800m 길이의 서순라길이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들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주말 찾은 서울 종로구의 서순라길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도 음식점 바깥 좌석이 꽉 차 있었고, 우산을 쓴 채 줄을 서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서순라길에는 각종 음식점과 카페들이 입점해있는데, 대부분의 가게가 성곽을 바라보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야외 자리를 갖추고 있다.
이날 찾은 서순라길의 인기 음식점 앞. 오픈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웨이팅 등록을 위해 모여들었다. 친구들과 함께 입장을 기다리던 김윤전씨(27)는 "성곽 감성이 좋으니까 찾게 되는 것 같다"며 "사진도 잘 나오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가는 것 같아서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순라길을 찾은 방문객들은 성곽을 배경으로 너도나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서순라길의 인기는 수치로도 증명됐다. 서울시 상권분석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순라길의 외식업 매출액 중 약 59%를 20대와 30대가 차지했다. 서순라길을 찾는 상당수가 20·30세대인 셈이다. 또한 서순라길 인근 골목상권의 월평균 매출액은 2020년 평균 172만원에서 올해 1분기 기준 434만원까지 152% 급증했다. 남자친구와 함께 데이트하러 왔다는 이하니씨(29)는 "원래도 자주 왔었는데, 요즘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며 "성곽길 바로 옆이라 고즈넉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했다.
서순라길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위치한 '원조 한옥 감성' 익선동이 여전히 MZ세대의 핫플레이스로 건재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장소를 경험하려는 심리가 인근 서순라길의 인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조선시대의 체취와 현대 서울다운 모습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매력이 MZ세대를 사로잡았다"며 "북촌과 서촌, 익선동 같은 한옥 중심의 전통 핫플레이스도 있지만, 너무 유명해지다 보니 조금 더 새로운 곳을 찾으려는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이은서 기자 lib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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