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읽고 탐구하는 일은 곧 자신의 변화를 허락하는 근사한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는 독자에게 지적 활동에 관해 이처럼 설명한다. 그는 과거 전도유망한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적 욕구가 넘쳤던 그는 학문의 세계에 빠져 자유를 만끽했지만, 중년이 된 어느 순간 자신이 몸담은 학계가 위계와 경쟁이 만연한 '배움에 대한 사랑'을 배반하는 곳이란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이후 20년 넘게 학생과 교수로 몸담은 학계를 떠나 캐나다 동부 외딴 숲속의 종교 공동체에 몸을 의탁한다. 그곳에서 주어진 임무와 노동, 봉사를 수행하며 '작고 평범한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그런 묵상의 결과물이다. 생산성이나 성공 등의 척도로 평가할 수 없는 자기 성찰의 통로가 되는 '공부' '배움'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공유한다.
사회생활에서 권력 다툼과 경솔한 평가에 의해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에게 공부는 부정당한 그의 가치를 회복시켜준다. 이것이 지적인 삶이 존엄의 원천인 이유다. <103쪽>
자유로운 성인으로서 독서하고 탐구하는 일은 곧 자신의 변화를 허락하는 근사한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이때 일어나는 변화가 틀림없이 긍정적인 것이라면 무릇 독서와 사유에는 어떠한 위험도 따르지 않을 것이며, 사유의 자유가 지니는 의미도 지금처럼 묵직하지 않을 것이다. <133쪽>
배움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최악의 자아를 탈출하여 더 나은 자신이 되는 것, 충분하지 않은 것과 마주쳤을 때 더 나은 것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다. <155쪽>
어떠한 좋은 것, 무언가보다 더 나은 것에 집중할 때 우리는 우리 개인의 존엄을 드러내는 동시에 내가 '교감'이라고 하는 깊은 인간적 연결이 이루어질 기틀을 쌓는다. 정치적 사회적 생활은 인간을 사회적 기대에 의해 한계 지어지는 존재로 폄훼하며 그 잣대는 주로 유용성이다. 그러나 지적인 삶은 유용성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새로운 관계 맺기의 방식을 열어준다. 지적인 삶에서는 공통된 목표를 지닌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새로운 인간관계가 맺어진다. <163~164쪽>
인문학적 배움에는 보통의 공동 작업이나 목표에서 우러난 교감에서 한 걸음 나아가 특별하고 희귀한 인간적 교감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 그렇게 피어난 유대감은 사회 계급과 인종 집단, 남녀노소 사이의 장벽을 허물어뜨린다. <171쪽>
지적인 삶에는 어떤 소용이 있을까? 지적인 삶은 고통으로부터 도피처가 되어주고, 개인의 존엄을 상기시키며, 통찰과 이해의 원천이자 인간의 열망이 자라나는 정원이다. 지적인 삶은 벽의 움푹 파인 공간과 같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눈앞의 논쟁에서 잠시나마 한 발짝 물러나 시야를 넓히고, 자신이 상속받은 보편 인류의 유산을 기억해낼 수 있다. 이 모든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배움은 인간의 유일한 미덕은 아니더라도 핵심 미덕인 것이 분명하다. <175~176쪽>
배움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건 인간이 본질적으로 알려는 사람이거나 사랑 하려는 사람이거나, 혹은 둘 다이기 때문이다. <178쪽>
지적인 삶은 금욕주의의 한 형태이자 자신을 일구는 일이라서, 식물을 기를 때 햇빛과 토양과 씨앗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일부를 뿌리째 뽑아내고 말리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된다. <183쪽>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한낱 사회적 역할로 위축될 때, 성취의 기계 속 톱니바퀴로 전락할 때, 억압당하고 교도소에 갇혔을 때, 이기적 허위가 만연한 사회생활을 해나갈 때, 비로소 공부하는 삶의 진가가 드러난다. 이러한 삶은 단지 경제와 사회와 정치에 대한 기여로 환원될 수 없는 한 사람의 인간을 들춰내 보여준다. <296쪽>
야심이 위험한 것은 그것이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피상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의 전율, 호의를 받을 때의 즐거움, 누구보다 돋보이는 기쁨. 이런 전율은 우리를 표면에 붙들어두고 그 너머에 존재하는 진정한 미덕에 가닿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298쪽>
공부가 본질적으로 표면을 넘어서 더 깊이 뻗어나가는 것, 겉으로 드러난 외면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 뻔해 보이는 것 이상을 갈망하는 것이라면, 공부는 일반적으로 '지식'이라고 하는 것과는 거의 무관하다고 보아도 좋다. 오늘날 이른바 '지식'이란 단순히 올바른 의견을 흡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99쪽>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제나 히츠 지음 | 박다솜 옮김 | 에트르 | 344쪽 | 2만2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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