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에 걸쳐 목숨 바친 의병정신 '의성의 혼'이 되다
의의(義義)의 고장 의성 충절의 DNA 계승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싸운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의병의 날'(6월 1일)을 맞아, 경북 의성 출신 부자(父子) 의병 권희순·권수경 선생의 충절이 재조명되고 있다.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 위치한 '의성 의병기념관'은 120여년 전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운 의병들의 중심지로,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병 정신의 산 교육장이자 후손들이 충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상징적 공간이다.
'의병의 날'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1592년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지정한 국가기념일이다. 2008년 전국 의병 유족과 단체들이 국회에 기념일 지정을 청원했고, 2010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매년 6월 1일로 지정됐다.
◆ 나라 구한 사촌 부자의병…"문무겸전한 충신"
의병 권희순(1548~1598) 선생은 조선 명종 3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문무에 능하고 천문·지리·병학·산수에 두루 통달해 세 차례 향시에 올랐고, 선조 16년 무과에 급제했다.
이후 선전관, 훈련원첨정, 내금위별시를 역임한 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수령들이 성을 버리고 도주하던 시기 안 집사 김륵의 천거로 의성 고을의 수성장에 임명됐다. 경상좌병사 성윤문과 함께 전투를 지휘하며 전공을 세웠고, 의성군의 전투 기여도가 도드라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투 중 유탄을 맞고도 이를 숨긴 채 병사들을 독려했고, 결국 상처가 악화해 1598년 51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공의 행적은 『동사(東史)』에 등재돼 있으며, 묘소는 경북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지동에 있다.
◆ 정묘·병자호란서 다시 봉기…아들 권수경의 항쟁
아들 권수경(1584~1659) 선생은 선조 17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자정(子正), 호는 자락당(自樂堂) 또는 사제당(思齊堂)이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경상좌도 의병도유사로 활약했다.
권수경 선생은 조부 권무성, 부친 권희순으로 이어지는 충절의 가문 안동권씨 부정공파 출신으로, 고려 태사 권행의 24세손이다. 임란의 정신을 계승해 다시 의병을 조직해 항쟁에 나섰고, 이후 조선 후기 의병 지도자로 존경받았다.
◆ '의의 고장' 의성…대를 이은 충절의 전통
경북 의성은 '의(義)'자가 들어간 전국 네 곳의 지명 중 하나로, 예로부터 충절의 고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안동권씨 부정공파 후손들은 점곡·옥산 일대에 정착해 문중을 이루며 가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점곡 서암리에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제자한 '사와당(沙窩堂)' 기적비가 세워져 있어, 의병 정신을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임란기 권희순, 병자호란기 권수경, 무신란기 권두정(1678~1731) 선생까지 3대에 걸친 의병 활동은 현재까지도 의성의 대표적 충절 유산으로 전해진다.
◆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의병의 날, 그 의미
의병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자신을 던진 이들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날이다. 조국의 위기 앞에서 스스로 나서 싸운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은 오늘날에도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
한 세기 전 피와 땀으로 지켜낸 의(義)의 정신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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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문을 지나며, 우리는 되묻는다. '의'란 무엇인가.
영남취재본부 권병건 기자 gb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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