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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EW] 시장의 기억력을 얕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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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경제론, 단기 부양과 장기 불신의 충돌점

[THE VIEW] 시장의 기억력을 얕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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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호텔 경제론'이라는 개념이 경제 담론의 한가운데로 떠올랐다. 이 이론의 핵심은 화폐가 시장 내에서 지속적으로 순환함으로써 경제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했을 때 지출액보다 더 큰 규모로 국민 소득이 증가하는 효과, 즉 재정승수의 개념과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호텔 경제론은 재정 정책보다는 통화량의 유통 속도와 총량에 더욱 초점을 맞춘다.


호텔 경제론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이 존재하지만, 그중 하나는 호텔 예약자가 예약을 취소하여 실제 숙박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논리가 실제로 타당하다면, 우리는 손쉽게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 경제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일시적으로 화폐 순환이 빨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특정 부문에서 소비가 일어나는 듯한 착시 효과를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 주체들은 이러한 패턴에 적응하며 자신들의 행동 방식을 수정하게 되고, 이는 결국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호텔 운영자 입장에서 이 상황을 살펴보자. 초기에는 예약이 접수되면 당연히 결제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하여 자금 계획을 수립하고 지출을 계획할 것이다. 하지만 예약 후 취소 비율이 점차 증가한다면, 호텔은 예약 수입의 불확실성 때문에 보수적인 자금 운용을 하게 될 것이다. 즉, 높은 확률로 취소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인 투자나 지출을 최대한 자제하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수 있지만, 이러한 행동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장기화될 경우, 관련 산업의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예측 불가능성은 경제 주체들의 신뢰를 저해하고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신뢰의 문제는 정부 정책 및 사회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과도 깊이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미국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여러 우려 중 상당 부분은 예측 불가능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강력한 관세 정책을 예고하며 상대국을 압박하다가도,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돌연 입장을 바꿔 타협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또한,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해임 가능성을 시사하다가도, 법적 문제 등에 직면하자 한발 물러서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의 급등으로 나타났으며, 기업들의 투자 심리를 냉각시키고 개인들의 소비 지출을 둔화시키는 등 실물 경제에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초래하고 있다.

[THE VIEW] 시장의 기억력을 얕보지 마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17년 "지지자께서 손그림으로 만들어 보내주셨다"며 공유한 자료 사진. 사진 = 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국내 상황을 돌아보아도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계 및 재계 주요 인사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실질적인 처벌과 사회 정의의 실현은 요원해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일반 시민들은 단기적으로는 현 상황에 순응할 수밖에 없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 시스템과 공동체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 사회적 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혼란과 법치의 공백을 악용하여 법망을 교묘히 회피하거나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은 낮은 비용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는 학습 효과를 통해 더욱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신뢰 상실의 비극적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반복되는 거짓말로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잃은 양치기 소년은 정작 진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모든 양을 잃고 만다. 우리 사회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 그리고 국민과 정부 및 제도 간의 신뢰는 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둥 중 하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신뢰의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의외로 명확하다. 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정당한 기대에 부응하고, 일관성 있고 공정한 원칙을 통해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주체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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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규 미국 윌래밋대 교수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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