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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국민시인 신경림의 마지막 詩..."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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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오는 22일, 신경림 시인 1주기를 앞두고 유고시집이 출간됐다. 1956년 등단한 시인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운율 있는 글로 뭇사람의 마음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투병하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 있는 것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그의 생의 마지막 말 역시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였다고 한다. 11년 만의 신작으로, 유족이 고인의 컴퓨터에서 미발표작을 찾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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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국민시인 신경림의 마지막 詩..."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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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먼지에 쌓여 지나온 마을/ 멀리 와 돌아보니 그곳이 복사꽃밭이었다// 어둑어둑 서쪽 하늘로 달도 기울고/ 꽃잎 하나 내 어깨에 고추잠자리처럼 붙어 있다
-「고추잠자리」 전문

복사꽃 살구꽃이 피어 흐드러지고 안개를 뚫고 햇살이 스민다. 나는 먼 나라, 더 먼 나라로 가는 꿈을 꾸면서. 당신과 함께 나의 스물에.// 종일 나는 거리를 헤맨다. 문득 기차를 타고 가다가 산역에서 내리기도 하고. 모차르트를 듣고 트로츠키를 읽는다. 당신의 눈빛에서 꿈을 놓지 않으며. 당신은 나를 내 나이 서른으로 이끌고 가고.// 세상은 어둡고 세찬 바람은 멎지 않는다. 나는 집도 없고 길도 없는 사람. 달도 별도 없는 긴 밤에, 빈주먹을 가만히 쥐어보면 문득 내 앞에 나타나는, 당신은 나의 마흔에서 온 사람.
-「당신은 시간을 달리는 사람」 부분

바위틈에도 돌 틈에도 숨은 것들이 있다./ 나무 사이에도 담벼락 사이에도 있다./ 꽃들이 숨어 있고 풀들이 숨어 있고 돌들이 숨어 있다./ 바람을 피해 햇살을 피해 숨어 있을까, 아닐 게다./ 숨어 있어 아름답고 보이지 않아 더 아름답다.
-「숨어 잇는 것들을 위하여」 부분

밝은 눈과 젊은 귀에 들어오지 않던 것들이/ 흐린 눈과 늙은 귀에 비로소 들어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을 나는 안다./ 나는 섭섭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를 끝내는 날이 될지라도.
-「소요유(逍遙遊)」 부분

소백산 풍기로 별을 보러 간다// 별과 별 사이에 숨은 별들을 찾아서/ 큰 별에 가려 빛을 잃은 별들을 찾아서/ 낮아서 들리지 않는 그들 얘기를 듣기 위해서// 별과 별 사이에 숨은 사람들을 찾아서/ 평생을 터벅터벅 아무것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찾아서/ 작아서 보이지 않는 그들 춤을 보기 위해서// 멀리서 큰 별을 우러르기만 하는 별들을 찾아서/ 그래서 슬프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별들을 찾아서/ 흐려서 보이지 않는 그들 웃음을 보기 위해서
-「별을 찾아서」 부분

그리운 것이 다 내리는 눈 속에 있다./ 백양나무 숲이 있고 긴 오솔길이 있다./ 활활 타는 장작 난로가 있고 젖은 네 장갑이 있다./ 아름다운 것이 다 쌓이는 눈 속에 있다./ 창이 넓은 카페가 있고 네 목소리가 있다./ 기적 소리가 있고 바람 소리가 있다
-「눈이 온다」 부분

어린 시절 나는 일없이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나가 강물 위를 나는 물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카사블랑카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바이칼호의 새떼들 울음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다 늙어 꿈이 이루어져/ 바이칼호에 가서 찬 호수에 손도 담가보고/ 사하라에 가서 모래 속에 발도 묻어보고/ 파리의 외진 카페에서 포도주에 취하기도 했다/ 그때도 나는 행복했다, 밤마다 꿈속에서는/ 친구네 퀴퀴한 주막집 뒷방에서 몰래 취하거나/ 아니면 도랑을 쳐 얼개미로 민물새우를 건지면서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부분

여름이 오고 다시 겨울이 가고/ 이렇게 세월은 흐르는 동안 우리는/ 땅에 튼튼히 뿌리박은 고목이 되었다/ 철따라 꽃과 잎과 열매를 자랑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날 눈비를 맞받아 이겨내면서/ 꿈 많은 아이들을 별나라로 이끌고/ 지친 이웃을 위하여/ 그늘이 되어주었다/ 봄이 오고 다시 가을이 가고// 이제 우리들 모두 여기/ 나무처럼 서 있다// 빨간 열매로 열린 우리들의 삶/ 되돌아보면서/ 씨앗으로 모였던 옛날을 그리면서/ 씨앗처럼 나무처럼 열매처럼
-「씨앗처럼 나무처럼 열매처럼」 부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신경림 지음 | 창비 | 152쪽 | 1만3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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