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단위' 제한 둔 현행 연장근로 제도
"첨단산업 적용은 무리…경쟁력 저하"
정년 연장, 고용 이중구조 심화 우려
"세제 개편, 경영 안정성 직결" 지적도
경제계가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달라"고 요청한 건 정권 교체 이후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주 4.5일제 도입, 정년 연장 등 민주당이 내세우는 노동 관련 공약이 산업 현장과 괴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최근 정치권이 '노동시간 단축'과 '정년 연장'을 대선 의제로 내세우자 기업들은 제도 변화가 초래할 현실적 충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드러냈다. 공급망 재편, 고금리·고물가, 미·중 갈등, 산업 구조 전환 압력까지 더해지며 기업들은 정책 불확실성과 비용 리스크에 어느 때보다 민감해졌다. 재계는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이재명 후보 초청 간담회를 단순한 의례가 아닌 절박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창구로 삼았다.

이런 우려도 무리는 아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본격화하며 경영계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뿐 아니라 보수를 대표한다는 국민의힘도 주 52시간제를 폐지하되, 주 4.5일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산업계는 현행 제도만으로도 이미 경직된 상황이라며 추가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산업현장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1주 단위로 엄격히 제한된 현행 연장근로제도는 급격히 변화하는 경영 상황에 대응하고 창의성·자율성 등이 요구되는 첨단산업 분야에 적용하는 데 무리가 있다"며 "가뜩이나 노동생산성이 경쟁국에 비해 낮고 중소기업들은 인력 확보가 어려운데, 법정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줄인다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 회장은 정년 연장 이슈에 대해서도 2013년 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인건비 부담이 커진 기업들이 40~50대 조기 퇴직을 늘릴 수밖에 없었고 그 여파로 청년 채용 여력도 줄었다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호봉제 기반의 인사체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정년을 65세로 일괄 연장할 경우 고용시장의 이중구조가 더욱 심화하고 나아가 세대 간 갈등까지 격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히려 퇴직 후 재고용이나 탄력적 근무 같은 방식이 고령자 일자리 문제에 더 적합하다고 봤다.
기업의 경영안정성과 직결되는 세제 개편도 주요 제안 중 하나로 떠올랐다.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 회장은 "중견기업 절반 이상이 창업자 또는 1세대 경영자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향후 10년 내에 대규모 경영 승계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승계 문제는 단지 자산 이전의 차원이 아니라 고용·기술 전승, 지역경제 유지를 좌우하는 생존 과제라고 강조했다.
현행 상속·증여세제가 이를 뒷받침하기엔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0% 지분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두 세대만 지나면 지분이 16% 수준으로 줄어드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많은 기업들이 경영권 불안을 겪거나 해외 이전을 고민하고 있다는 게 최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이 할증평가를 포함해 최대 60%에 달하는 현행 제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수준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30%로 낮춰야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영 전략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5단체장은 이날 근로시간 단축 대신 인공지능(AI)·신산업·통상·노동 등 4대 분야 14개 과제를 담은 '대선 제언집'을 이재명 후보에게 전달했다. 기업의 현실을 반영한 유연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제안하기 위해서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 경제가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하며 단기 처방이 아닌 대대적인 성장 모델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항공우주, 로봇, 방산, 바이오 등 미래 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하기 위해선 정부의 기반 인프라 조성 및 세제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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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식 한국무역협회장은 통상환경 악화에 따른 피해 우려를 전했다. 그는 "민간과 정부가 공동으로 대미 협의 채널을 강화해야 하며, 특히 통상 리스크로 자금 압박에 직면한 중소기업에 대해선 정책금융을 통한 직접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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