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 수주에 성공하며 원전 수출 역사상 최대 실적을 눈앞에 뒀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제동이 걸렸다. 체코 법원이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이며 계약 서명을 잠정 중단시킨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절차적 문제지만 그 근저에는 '외국 보조금'이란 민감한 쟁점이 자리하고 있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한수원이 제시한 '가격'에서 출발한다.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은 1GW급 원전 2기를 건설하는 사업으로, 총 사업비는 약 18조~26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이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을 당시, 우리 정부는 건설 기술력과 관련해 ㎾당 건설단가가 3571달러로 타국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다고 소개했고, 이후 많은 언론에서 체코 측에 이와 비슷한 수준으로 제시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EDF(7931달러)나 미국 웨스팅하우스(7800달러) 추정 제안가의 절반 이하다. 그러나 EDF 측은 단가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덤핑 수준의 입찰"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는 유럽연합(EU)이 2023년 7월부터 시행한 '외국 보조금 규제(Foreign Subsidies Regulation·FSR)'다. 이 규정은 외국 정부의 보조를 받은 기업이 EU 역내 기업을 인수하거나 공공입찰에 참여할 경우 일정 규모 이상(보조금 400만유로 이상·입찰 규모 2억5000만유로 이상)의 계약에 대해 사전 신고하거나 EU 집행위원회의 심사를 받도록 한 제도다. 심사 결과 시장왜곡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면 계약 무효화나 과징금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EDF가 체코 반독점사무소(UOHS)에 제기한 외국 보조금 관련 이의신청이 'UOHS의 관할 밖 사안'이라며 기각된 점도, 체코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한 배경 중 하나였다.
EDF는 한수원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공기업인 만큼 EU의 외국 보조금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수원은 한국전력공사의 100% 자회사이며, 모회사인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이다. 이 때문에 EDF는 한국 정부가 사실상 한수원의 입찰 가격을 낮추는 데 기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번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이 외국 보조금 규제의 적용 대상이 아니며 한수원에도 어떤 형태의 보조금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로 한수원은 "규정이 발효되기 전인 2022년 3월에 입찰이 시작됐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계약 자체도 무산이 아니라 일시적인 절차 지연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EDF가 가격 경쟁에서 밀리자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계약을 늦추려는 '견제 전략'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과 체코가 꾸준히 추진해온 원전 협력 관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EU 규제를 앞세워 한국의 원전 수출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프랑스는 유럽 내 원전 기술력과 시장 영향력을 오랜 기간 독점해왔으며 체코 신규 원전 수주는 유럽의 에너지 주도권 확보라는 전략적 의미를 지닌 사업이다. 그만큼 프랑스 입장에서는 한국이 수주에 성공할 경우 자국 산업의 입지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프랑스가 규제 틀을 이용해 한국의 원전 산업 부상을 견제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지금 뜨는 뉴스
전문가들은 현재의 논란이 실질적 변수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계약 무산보다는 일시적인 해프닝에 가깝다"며 "체코 법원이 얼마나 신속하게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전체 일정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가 잔칫상에 재를 뿌린 꼴인데, 체코 정부도 이에 강력히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