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획 [허위 청구·가짜 사고…그 돈은 내 보험료였다]
<그들은 이렇게 속였다>
②-⑷갈수록 조직화·전문화에 속수무책
"공격수 구해요" 기자가 연락해보니…SNS서 더 은밀히 공모
3인 이상 보험사기 지난해 742억원
3인 이상 사기액 증가율…3년새 장기보험 88.5%↑·車보험 10.1%↑
"공격수 구함. 자차 보유, 종합보험, 확실한 분만."
지난 1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액 알바'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텔레그램을 통해 기자는 A씨에게 연락했다. A씨는 자동차 고의 충돌 사고를 일으키는 이른바 '보험빵' 알바를 은밀히 모집하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공격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짜고 치는 가피공모 사기의 가해자 역할이다.
A씨는 차종·나이·보험사를 가장 처음 물었다. "K5·28세·캐롯손해보험"이라고 답하자 보험사가 캐롯인 점을 못마땅해했다. 캐롯 가입자가 차량에 장착하는 기기에 위치추적 기능이 있어 자칫 사기가 적발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는 종합보험과 대인배상2 가입 여부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보험금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화를 나눠보니 A씨는 고의 사고에 직접 가담하지 않는 일종의 브로커였다. 뒤에서 피해차량 준비와 인력 모집, 시나리오 설계 등을 하고 자금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피해자 역할로는 30대 여성이 대기중이라고 했다. 그에겐 한 번 사고를 낸 차로 '재탕'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매번 다른 명의와 다른 차로 보험금을 수령해왔기 때문에 7년간 단 한번도 조사받지 않았다고 자랑까지 했다. 그는 여러 정보를 캐묻다 알바비로 170만원을 제시했다.
지난해 8월14일 보험사기 방지 특별법 개정으로 보험사기를 알선·유인·광고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됐다. 하지만 SNS엔 보험사기 광고글이 여전했다. 그들만의 은어를 사용해 사기단을 모집하고 구체적 실행계획은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서 진행하는 등 사기 공모는 더 은밀해졌다.
![[단독]"170만원 드릴게요. 37살 여자가 탄 제차를 박는 겁니다"…'고액 알바' 둔갑한 '가피 공모'](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42410184733220_1745457527.jpg)
조직화·대형화하는 보험사기…피해 규모 갈수록 커진 원인
보험사기는 SNS를 타고 더욱 조직화·대형화하는 추세다. 최근 발생한 조직형 보험사기 중 2030세대가 저지른 범죄 상당수는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텔레그램 등에서 공모한 경우가 많았다. 보험사기가 개인에서 집단화되면 보험금 누수는 더 커지고 국민들의 보험료는 그만큼 올라간다.
아시아경제가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브로커나 3인 이상이 연루된 보험사기는 2022년 718억원에서 2024년 742억원으로 3.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생명보험은 185억원에서 97억원으로 약 절반이 줄었지만 손해보험은 533억원에서 645억원으로 21% 늘었다. 손해보험 중에서는 장기보험이 2022년 122억원에서 2024년 230억원으로 88.5% 급증했다. 같은 기간 자동차보험은 365억원에서 402억원으로 10.1% 증가했다.
장기보험에서 3인 이상 보험사기가 급증한 건 최근 병원·브로커·설계사·환자 등이 연루된 대형 보험사기가 많아진 것과 관계가 깊다. 지난해 경기 가평군에 위치한 B요양병원 원장과 상담실장 등 의료진 5명은 가짜환자 136명을 모집했다. 의료진은 환자들에게 입원을 권유하며 가입한 보험 보장한도에 맞춰 치료와 약 처방 등 치료계획을 설계했다. 환자들은 미백·주름개선 시술 등을 받고 의사가 발급해준 허위 진료기록을 보험사에 제출해 보험금을 타냈다. 이들이 수령한 보험금은 72억원에 이른다.
전문지식 악용해 보험사기…제보 없이 막기 역부족
보험사기는 해당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로 지능화·전문화됐다.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신종 사기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파편화된 조사·수사 인력만으로는 이를 잡아내기 어렵다.
C손해보험사는 2023년 2월 대전의 한 유리막 코팅업체 대표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사고 차량 수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비업체와 렌터카 업체가 짜고 수리비용을 부풀린다는 내용이었다.
사기 구조는 이랬다. 사고 난 D차량이 수리를 위해 정비업체로 입고됐다. 정비업체는 D차량 차주에게 유리막 코팅을 서비스로 해주겠다며 차가 없는 동안 지인 렌터카 업체를 통해 차량을 이용하도록 권했다. 정비업체는 아는 유리막 코팅업체 E사를 통해 D차량이 과거 유리막 코팅을 받았다는 허위 보증서를 발급하도록 했다.
허위 보증서가 나오자 다른 유리막 코팅업체 F사는 D차량에 유리막 코팅을 한다며 차 수리 기간을 늘렸다. 실제로 유리막 코팅은 하지 않았다. 유리막 코팅은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워 보증서만 있으면 대체로 보험금이 지급되는 점을 악용한 수법이었다. 이렇게 늘어난 수리 기간은 공임과 렌터카 이용비 증가로 이어졌고 결국 보험금이 늘어났다. 부풀려진 보험금은 정비업체와 렌터카 업체, 유리막 코팅업체가 나눠 가졌다.
C손보사가 조사에 나서자 관련 업체들 모두 잘못을 인정했다. C손보사 관계자는 "다행히 제보가 있어서 보험금을 전액 환수했다"면서 "이 외에도 수리비를 교묘하게 부풀리는 사기수법이 많은데 보험사 자체 인력만으로는 적발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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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손보사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C손보사의 유리막 코팅에 따른 손해액은 554억2000만원이었다. 유리막 코팅 수리비로 301억4000만원, 유리막 코팅에 따른 렌터카 이용비가 252억8000만원에 달했다.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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