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어린이보호구역 사고로 기소돼
국선변호인과 국민참여재판 준비
일몰 시각 등 디테일하게 살펴
'피하기 어려운 사고' 설득시키기도
배심원 7명 중 6명 '무죄' 의견
2021년 11월 11일 저녁 7시45분. 경기 의정부의 한 사거리에서 택시기사 김영수씨는 평소처럼 차량을 몰고 우회전을 했다. 횡단보도 신호는 점멸하고 있었고, 보행자는 보이지 않았다. 정지선에 잠시 멈춘 그는 뒤차 흐름을 고려해 핸들을 틀었다. 그 순간, 나무와 신호 제어기 사이 틈에서 한 어린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김씨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아이는 차량과 부딪혔다. 뒤차를 추월해 우측으로 지나던 오토바이 때문에 시야가 가려졌던 상황이었다. 김씨는 당황했지만,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아이는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고, 보험 처리를 통해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예상과 달리 그날의 신고는 김씨에게 3년 넘는 형사재판의 시작이었다. 검찰은 김씨를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어린이보호구역 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1심에서는 무죄가 나왔지만,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원의 유죄가 선고됐다. 어린이보호의무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고등법원이 절차상 위법성이 지적하며 사건을 파기환송했고, 국민참여재판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사설 변호인을 쓸 여력이 되지 않았던 김씨는 국선변호인과 함께했다.
변호를 맡았던 김은영·이진성 국선전담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의 장점에 주목했다. 김씨처럼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의 사연을 시민 배심원들이 직접 듣고 판단하는 방식은, 법리적인 판단보다 실제 운전자의 입장에서 얼마나 피하기 어려운 사고였는지를 설득하는 데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변호인들은 변론 준비 과정에서 기상청의 일몰 시각까지 확인하는 등 '디테일'에 신경 썼다. 사고 발생 시점이 통상적인 등·하교 시간대가 아니라는 점, 사고 지점이 펜스 없이 무단횡단이 빈번한 구간이라는 점도 배심원들에게 상세히 설명했다.
국과수와 도로교통공단에 의뢰한 감정 결과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감정서에 따르면 김씨는 피해 아동을 인지한 즉시 제동했지만, 사고를 피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변호인들은 배심원들에게 "여러분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겠습니까"라는 질문과 함께 최후 변론을 마쳤다. 결국 배심원 7명 중 6명이 김씨에게 무죄 의견을 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뉴스를 보면서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사고들이 나오는 걸 보면서도 이런 사건으로 기소까지 될 거라고 생각은 못 했었다"며 "무죄를 받은 만큼 비슷한 사건들에서 제 사례와 비슷한 상황이 있다면 운전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당시 어린이보호구역에 대한 이슈가 화제였었던 만큼 국민참여재판이 아니었다면 무죄는 어려웠을 수 있다"며 "영수씨 사건은 억울한 부분이 있는 만큼 책임감을 많이 느껴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어 기쁘고 오랜 기간 속 썩으셨을 텐데 위로가 되셨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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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는 "이 사건은 국선변호사 제도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또 국민참여재판만이 가지는 강점은 무엇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며 "국선변호인들은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도움받기 어려운 분들의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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