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韓, 고령층 계속근로 불가피
정년 연장, 유노조·대기업 집중…이중구조 키워
65세까지 계속근로 시 성장률 연 0.1%P↑
노인 일자리 대비 월 소득 179만원↑
"'정년 연장'이 아닌 '퇴직 후 재고용'이 필요하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해 고령층 계속근로가 불가피한 한국에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까.
한국은행은 8일 고령층 계속근로를 위해 법정 정년 연장이 아닌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이 안착돼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정년연장은 청년고용 위축, 조기퇴직 증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심화와 같은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제안하는 방식은 '단계적 접근'이다. 기업에 세분화한 인센티브를 줘서 먼저 '자율적인 재고용' 확산을 유도한 후, 점진적으로 '재고용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근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면 근로자는 현행 정부 제공 노인 일자리 대비 179만원 높은 월 소득을 올릴 수 있다. 한국 경제성장률 역시 연 0.1%포인트 올라간다. 인구감소 하락분을 3분의 1가량 만회하는 수준이다.
고령층 계속근로 "피할 수 없다"…'생산적 일자리' 절실
한은 고용연구팀과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날 공동 연구한 'BOK 이슈노트-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를 내놓고 이같이 밝혔다.
고령층의 계속근로는 불가피하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은 노동 공급 감소와 성장 잠재력 저하를 완화하기 위해 고령층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오삼일 한은 조사국 고용연구팀장은 "성·연령별 고용률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향후 10년간 노동 공급(임금 근로자 기준) 규모는 141만명 감소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현재 노동공급량의 6.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는 향후 10년간 국내총생산(GDP)을 3.3%(연 0.33%) 낮추는 요인이다. 이런 감소 폭은 향후 10년간 평균 잠재성장률(연 1.6%)의 약 5분의 1에 해당한다.
오 팀장은 '고령층이 더 오래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 한국의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고령층의 높은 계속근로 의지, 은퇴 후 소득 공백, 낮은 만족도의 정부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연금수급 개시 연령이 단계적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2028년 이후 60세에 정년퇴직하는 고령층은 연금 수급개시 전까지 5년의 소득 공백(60~64세)이 발생하게 된다. 오 팀장은 "높은 계속근로 의지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고령층은 본인이 종사하던 주된 일자리에서 계속 일하지 못하고 단순노무직 등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기존 경력을 활용하면서 생산성을 유지할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정부 노인 일자리는 봉사활동 개념의 공익서비스 유형이 대부분으로, 경력개발과 소득 보전 측면에서 양질의 일자리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봤다.
2016년 정년 연장, 유노조·대기업 집중…"노동시장 이중구조 키웠다"
2016년에 임금체계 조정 없이 시행된 정년 연장은 혜택이 유노조·대기업 일자리에 집중됐다. 조기퇴직 증가와 같은 부작용도 낳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년 연장으로 2016~2024년 55~59세 임금근로자 고용률은 1.8%포인트(약 8만명), 상용근로자 고용률은 2.3%포인트(약 10만명) 증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고령층 고용 증가 효과가 점차 감소했는데, 오 팀장은 이에 대해 "기업이 법적 정년 연장으로 인한 추가 부담을 조기퇴직 유도 등 인사·노무 정책으로 상쇄하려 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년 연장으로 인한 고령층 고용 증가 효과는 노동조합 비중이 높은 일자리일수록 크게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대기업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오 팀장은 "정년 연장 혜택이 고용 보호가 상대적으로 강한 유노조, 대기업 일자리에 집중되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특히 고령 근로자가 1명 늘 때 청년 근로자는 약 1명(0.4~1.5명) 감소했다. 대기업과 같이 청년층 선호도가 높은 일자리에서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 정년 연장으로 2016~2024년 23~27세 임금근로자 고용률은 6.9%(약 11만명), 상용근로자 고용률은 3.3%(약 4만명) 감소했다. 고령층 근로자가 1명 늘 때 청년층 근로자는 0.4~1.5명 감소한 셈이다. 오 팀장은 "임금체계 변화 없이 갑자기 정년을 연장하면서 고령 근로자가 늘어나게 되자 기업이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대적으로 조정이 용이한 신규 채용을 줄이며 청년 고용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정년 연장에 따른 고령층 고용 증가 효과가 컸던 유노조·대기업에서 청년층 고용 감소 효과도 컸다는 결과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정년 연장으로 임금은 고령층 보다 청년층과 중년층을 중심으로 하락했다. 정년 연장에 따른 2013~2019년 임금 변화를 보면, 고령층과 대체 관계가 높은 장년층에서 임금 감소 폭이 가장 컸다. 반면 고령층은 임금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이는 정년 연장으로 고용을 유지한 고령층의 임금 조정이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임금 수준이 같은 연령대의 다른 취업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임금에 대한 장기적 효과(2013년 대비 2023년 변화)를 보면, 하락 폭이 축소됐다. 이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들이 다양한 인사·노무 정책을 도입, 고령 근로자 증가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완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퇴직 후 재고용' 도입해야…日 임금 40% 삭감, 재고용 안착
향후 고령층 계속근로를 위한 정책 방향은 정년 연장보다 퇴직 후 재고용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지금처럼 연공형 임금체계, 고용 경직성, 60세 정년이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만으로 고령층 계속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청년고용 위축 등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반복될 우려가 있어서다. 오 팀장은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와 근로관계를 종료한 후 새로운 근로계약을 체결해 다시 고용하는 제도를 강화하고 개선하면, 임금체계를 개편하고 근로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하면서 고령층 계속근로를 장려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점진적·단계적으로 계속근로 제도를 도입했다. '60세 정년→65세 고용확보→70세 취업 기회 확보'로 이어지는 계속근로 로드맵을 1998년부터 2025년까지 약 30년간 점진적으로 도입했다. 정년 연장, 정년 폐지, 퇴직 후 재고용 등 기업 특성에 맞는 계속근로 형태를 노사가 합의해 유연하게 채택하도록 허용했다. 임금은 약 40% 삭감했다. 직무 조정이 이뤄지는 사례도 많았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부분적으로 제도화돼 있으며 이를 도입하는 기업은 최근 들어 증가세다. 지난해 기준 37.9%이며, 임금 연공성이 낮고 직무급·직능급을 운영하는 사업체일수록 재고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기업 내 재고용은 83%가량 이뤄졌다.
보고서는 현행 고령자고용법의 재고용 노력 의무를 재고용 실시 의무로 변경, 정년 이후에도 계속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근로자와 재계약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노사합의로 정한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저성과자 등을 예외로 인정하는 등 최소한의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오 팀장은 "현행 고령자 계속 고용 장려금(재고용된 고령 근로자 분기당 90만원)을 보다 내실화하고, 일률적 재고용에 한정하지 않고 지원 기준을 완화해 재고용 활성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접근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재고용을 단기간 내 법적으로 의무화하기보다는 초기에는 유인체계를 통해 자율적으로 재고용 제도의 확산을 유도하고 이후 기업에 재고용 의무를 부과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 팀장은 "단기간 내 재고용을 의무화할 경우 근로자의 교섭력이 강화되면서 현행 임금체계의 경직성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반복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65세까지 계속근로 시 성장률 연 0.1%P 증가…인구감소 영향 3분의 1 만회
계속근로가 성공적으로 정착될 경우 고령층 근로자는 생애 주된 일자리에서 생산성을 유지하며 더 오래 일할 기회가 확대된다. 이는 노동 공급 감소에 따른 성장 둔화를 완화하고 개인의 소득 안정성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다. 보고서 모의실험에 따르면, 65세까지 계속근로가 가능할 경우 향후 10년간 성장률을 0.9~1.4%포인트(연 0.1%포인트)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인구감소로 인한 경제성장률 하락의 3분의 1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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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고용 과정에서 임금을 40% 삭감한다고 가정하고 시뮬레이션한 결과, 소득 공백 기간(60~64세) 동안 정부가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에서 일하는 경우보다 월 소득이 179만원 늘었다. 65세 이후 연금 수령액도 월 14만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오 팀장은 "청년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역시 유의하게 나타나지 않았다"며 "추가되는 근로소득과 연금소득을 60세 기준으로 현재가치화할 경우에도 1억1000만원 증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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