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B·LG U+·헬로비전, 지난해 10월 과태료 처분
스팸·스미싱 범죄 악용 소지 커
통신사 관리 의무 지지만 현실적 한계
#1. 지난해 LG유플러스의 망을 활용해 문자 대량 발송을 대행해주는 A사가 해킹을 당해 불특정 다수 고객에게 스팸 문자가 발송됐다. 해커는 이 과정에서 발신자 번호를 다른 번호로 조작했다. LG유플러스는 불법 스팸문자 발송 사실을 파악한 뒤, A사에 발신번호를 바꿀 수 없도록 제한했다. 이로 인해 해킹을 당했던 A사는 영업을 못 할 처지에 놓였다. 대행사 특성상 발신자 번호를 의뢰업체 번호로 변경하지 못하면 영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백화점 홍보 메시지는 해당 백화점 번호로 바꿔서 고객에게 보내야 하는데 이게 안 되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해킹 탓에 어쩔 수 없었다"는 업체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여 번호를 바꿀 수 있도록 조치했다.
#2. SK브로드밴드의 망을 활용해 텔레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B사는 1년 전 특정 지역 고객을 대상으로 홍보하기 위해 국번을 제멋대로 바꿔 전화를 걸었던 사실이 적발됐다. 예를 들어, 서울 소재 업체가 부산 지역 고객에게 홍보 전화를 걸 때 02 국번 대신 051 국번으로 번호를 조작하는 식이었다.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국번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는 걸 고려한 수법이었다. 이로 인해 특정 지역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홍보성 스팸 전화를 받게 됐다.
전화나 메시지 발신자의 번호를 바꾸는 발신번호 조작 행위를 막지 못한 통신사들이 일제히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통신사들의 통신망을 활용해 스팸 문자를 보내거나 텔레마케팅 전화를 건 업체들의 조작행위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24일 각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전화번호 거짓표시 금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각각 1200만원의 과태료를 냈다. 관련 제재를 한 중앙전파관리소 관계자는 "상위 사업자인 통신사가 번호 변작(번호 조작) 관리 책임을 지는데, 관리에 일부 미흡한 부분이 있어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근거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4조2항 '전화번호의 거짓표시 금지 및 이용자 보호'다. 이 조항에 따라 영리를 목적으로 전화나 문자 발신자의 번호를 다른 번호로 바꿀 수 없다. 이 법에 따라 통신사들은 자사 통신망을 활용해 텔레마케팅이나 스팸 문자를 보내는 사업자들이 번호 조작을 할 때 이를 기술적으로 차단하거나 원래 번호로 표기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정부가 발신번호 조작 행위를 엄격하게 막는 건 번호 조작이 스팸 문자나 홍보성 전화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미싱이나 보이스피싱과 같은 범죄로 악용될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스팸 문자를 반복해서 대량으로 보내는 번호는 스팸 차단 시스템을 통해 걸러지지만, 번호를 계속 바꿔가면 감시망을 회피할 수 있다.
통신사들은 관리가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번호 조작을 사전에 막기는 어렵다고 했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통신사 한 곳당 많게는 수백 곳에 달하는 중개업체들과 계약한 상황"이라며 "이들이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는 횟수는 셀 수도 없어서 하나씩 점검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번호 조작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데 기술적인 한계점도 있다. 업체들이 번호를 조작할 때 사설 전화 교환기를 쓰기 때문이다. 다른 이통사 관계자는 "인터넷 망을 쓰면 오히려 잡아내기 쉬운데, 전화 교환기는 전화망을 써 일일이 들여다봐야 해 변작을 잡아내기 힘들다"고 했다.
적발이 되더라도 이통사만 처벌하고, 번호 조작을 한 업체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는 점도 문제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방망이를 휘둘러 누군가를 다치게 한 사람(번호 변작 업체) 대신 방망이를 만든 제작사(통신사)를 처벌하는 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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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으로 번호 변작을 방어하는 게 어려운 만큼, 모니터링 강화와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부 교수는 "사설 교환기를 활용한 번호 변작은 기술적으로 사후에 단속하는 방법뿐"이라며 "스팸 문자나 스미싱 문자를 받은 사람들이 관계 기관에 적극 신고하고, 바로 조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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