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221대·드론·도청장치 등 사용
'反러시아' 기자 납치·살해 모의도
영국에서 러시아 정보기관을 위해 첩보 활동을 벌인 혐의로 기소된 불가리아인 남녀 3명이 법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7일(현지시간)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런던 중앙형사법원 배심원단은 카트린 이바노바(33·여), 바냐 가베로바(30·여), 티호미르 이반체프(39) 등 불가리아 국적자들이 러시아에 포섭돼 간첩 활동을 벌인 혐의를 유죄로 평결했다.
이들은 2020~2023년 유럽 곳곳에서 러시아에 비판적인 기자나 인사들을 감시하고 납치를 모의하는 등 스파이 활동을 벌인 혐의를 받았다. 조사 결과, 이들이 소속된 첩보 조직은 탐사보도 매체 벨링캣에서 러시아에 비판적인 보도를 해 온 기자 크리스토 그로제프를 감시하면서 납치·살해를 모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도 러시아를 주로 다루는 매체 인사이더의 기자 로만 도브로호토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관계를 비판해온 카자흐스탄 정치인 출신 베르게이 리스칼리예브도 감시했던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훈련받았던 독일 내 미군 기지를 대상으로 스파이 활동을 벌였고, 영국 주재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가짜 시위를 계획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법원에 제출된 메시지 등으로 볼 때 이들 불가리아인 일당에 명령을 내린 인물은 러시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오스트리아 국적의 얀 마르잘레크다. 마르잘레크는 러시아 정보기관들을 대신해 이들에 지령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과거 회계 부정 스캔들을 일으키고 파산한 독일 전자결제업체 와이어카드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낸 인물로, 2014년 러시아 정보기관에 포섭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잘레크는 러시아 상부로부터 받은 지시를 영국 내 리더격인 오를린 루세프(46)에게 전달했다. 루세프는 이번 재판이 시작되기 전 다른 조직원 2명과 함께 자신의 스파이 혐의를 인정했다.
이날 유죄 평결을 받은 불가리아인 3명은 자신들이 스파이 활동에 연루됐다는 것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는 5월 예정된 선고 공판에서 최고 14년에 이르는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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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머피 런던경찰청 대테러본부장은 취재진에 "이 조직은 20여년간 대테러 수사를 하면서 본 가장 큰 규모 조직"이라며 "러시아를 대신해 거의 산업적 규모로 이뤄진 첩보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들이 사용한 장비를 두고 "스파이 소설에서나 볼 법한 것들"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휴대전화 221대, 심 카드 495개, 드론 11대, 휴대전화 데이터 추출 및 무선 활동 도청 기기 등을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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