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방패, 심장부를 가다⑥]
'해외엔 구세대 공정 분산' 원칙 희석될라
창업주 모리스 창, 과거 美 공장 설립 반대
<글 싣는 순서>
<1> 神이 된 TSMC…‘2나노’ 성지 가보니
<2> TSMC 발목 잡는 ‘6결’과 기술 안보
<3> 無名 대만이 열린다
<4> 한-대만, 견제와 협력 사이
‘해외에는 구세대 공정만 분산시킨다’는 대만 TSMC의 글로벌 생산 전략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2㎚(1㎚=10억분의 1m) 이하 최선단 공정을 갖춘 공장 건설을 결정하면서 오랜 기간 고수해 온 기술 안보 원칙이 희석될 가능성이 커졌다. 첨단 반도체의 해외 생산량이 늘면 미국의 대만 보호 명분도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5일 대만 현지 언론 및 주요 외신에 따르면 대만 내에서는 TSMC의 1000억달러(약 145조 2900억원) 규모 미국 신규 투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간) 웨이저자 TSMC 회장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2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을 갖춘 파운드리 공장 3개와 첨단 패키징 공장 2개, 연구개발(R&D) 센터를 추가로 건립하기 위해 최소 1000억달러를 새로 투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신규 공장의 구체적인 양산 규모와 시기, 공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최첨단 반도체 시설'을 TSMC가 미국에 건설할 것이라면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AI 반도체가 미국에서 만들어질 것이며, 이것은 경제 안보는 물론이고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최첨단 반도체 공정(N)을 대만에서만 운영하고, 이전 세대 공정(N-1, N-2)은 해외로 분산하는 TSMC의 글로벌 생산 전략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는 발언이다. 웨이 회장은 이번 투자에 대해 "미국 땅에서 가장 진보된 칩을 생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안팎에서는 기술 안보와 계획에 없던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담 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월 진행된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TSMC의 웬델황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올해 연간 투자 규모를 380억~420억달러라고 제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예산의 약 70%가 첨단 공정 기술에 할당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TSMC의 첨단 공정 투자가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국민당 소속의 야당 정치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당 소속 푸쿤치 입법원(국회) 원내대표는 "TSMC가 ASMC가 돼 국가를 보호하는 신성한 산이 사라진다면, 대만의 국가안보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주천코 입법원 입법위원은 "TSMC의 미국 내 반도체 생산량이 증가할수록 대만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낮아진다"면서 "미국이 향후 대만을 도울 인센티브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궈지후이 대만 경제부 장관은 1000억달러의 투자 계획이 아직 해외 투자와 관련된 정부 승인을 받지 않기 전의 계획이며, 정부는 투자자와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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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의 창업주 모리스 창은 미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는 데에 줄곧 반대해왔다. 아시아 국가들의 제조와 원가 경쟁력을 미국이 대체하기 어려울뿐더러, 집약적인 노동이 필요한 초미세 공정이 현지 노동문화와도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대만 내 전문가들은 혁신적인 방법이 아니고서야 대만 대비 50~100%가량 비싼 생산원가의 부담이 반도체 가격에 전가된다면, 제품 보급과 활용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타이베이(대만)=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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