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감원장 "일반주주 보호 미흡"
상장폐지 목적으로 한 공개매수 느는 추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일반주주 보호가 미흡하다고 지적한 가운데 공개매수가격의 적정성을 검토하는 외부기관의 평가와 이사회의 의견서 제출이 이뤄져야 한다는 연구기관의 지적이 나왔다. 필요하면 자진 상장폐지를 진행하되 그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주무 부처인 금감원은 최근 들어 증가세인 사모펀드(PEF)의 상장폐지 목적 공개매수와 관련해 제도적 손질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대를 가지고 개선 방안을 살필 예정이다.
이 원장은 지난 14일 임원 회의에서 "최근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상장폐지 목적의 공개매수가 많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일반주주 보호에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의 발언을 미루어볼 때 자진상폐 시 주주 보호를 위한 장치를 두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장의 임원회의 당부사항은 현재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폐지 현황을 분석해보니 개선이 필요한 것들이 보이니 한번 보겠다는 것"이라며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방향을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내용을 보고 개선방안이 있는지 살필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개매수는 주로 대주주가 사모펀드인 기업들이 상장을 유지하기보다 공시 의무 등 경영상 부담을 덜기 위해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이뤄진다.
자본시장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식 시장에서 공개매수 혹은 주식의 포괄적 교환 등 M&A를 활용한 자발적 상장폐지(스퀴즈 아웃) 사례는 매년 느는 추세다. 2009~2024년 9월까지 공개매수와 주식의 포괄적 교환은 각각 51건과 131건인데 이 중 2022년 이후 이를 진행한 사례가 각각 20건(39.2%), 33건(25.2%)에 이른다.
이처럼 상장폐지를 염두에 둔 PEF의 공개매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공개매수가격의 적정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상장폐지 목적 공개매수는 36건이 있었다. 금감원 분석 결과 공개매수 가격이 주당순자산에 미달한 경우가 36%였고 공개매수 이후에 거액배당(이전과 비교해 평균 24.5배)을 실시한 경우도 42%로 나타났다.
한편 자본시장연구원도 이 원장 발언 다음 날인 15일 'M&A를 활용한 자발적 상장폐지 시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과 과제'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황현영 연구위원은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와 일반 공개매수를 구분해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일반공개매수는 경영권 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서로 더 나은 조건을 주주에게 제시해 공개매수를 진행한다. 고려아연과 MBK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핑퐁게임하듯 공개매수 가격을 올렸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자진상폐를 전제로 한 공개매수는 상황이 다르다. 공개매수 전부터 최대 주주가 상당 부분의 지분을 확보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경영권 위협 우려 없이 공개매수를 진행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최대 주주는 원하는 조건에 공개매수가를 결정하기 쉬운 구조다. 누군가는 공개매수가격 수준이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지면 일반주주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같은 선택을 하기도 쉽지 않다. 상장폐지가 되면 보유한 주식이 휴지 조각이 돼 투자한 돈을 고스란히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기업이 제안한 공개매수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 연구위원은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공개매수가가 적정한지,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마련이 필요하고 이를 일반주주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제도적 장치로, 공개매수가에 대한 외부기관의 평가와 이사회의 의견서 제출을 꼽았다. 황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도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의 경우 상장폐지 관련 상세한 설명, 가격 산정을 위한 구체적 산식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또한 최근 개정된 합병 관련 규정과 같이 이사회 의견서 제출 및 외부평가기관 선임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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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또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의 경우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 시 별도의 소수 주주 보호를 위한 가격, 절차 등의 규제를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영국, 독일은 현금교부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 인정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금교부 합병이나 강제매수제도에도 소수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게 황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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