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미쓰비시UFJ 은행서 초대형 절도사고
40대 여직원이 지점돌며 고객 대여금고서 금품탈취
피해고객 60명에 피해액 100억원대 더 늘어날 듯
대여금고 보조키로 금품 훔쳐 투자비로 써
일본 화제의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에 등장하는 은행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일본 대형은행에서 100억원대 절도 사고가 발생했다. 은행원이 고객 대여금고의 보조키를 이용해 금고 안의 금품을 절도했다. 피해 고객만 60여명에 이른다. 은행장이 공개사과에 나섰지만 범행수법이 드러나면서 은행 내부관리의 허술함이 만천하에 드러나 파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드라마에서 정의구현에 나서는 은행원의 이름이 한자와 나오키이고 실사판 은행의 은행장 이름이 한자와 준이치다.
◆60명 고객에 100억 절도에 고개숙인 한자와 은행장
한자와 준이치 미쓰비시UFJ은행장과 경영진들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 직원에 의한 대여금고 고객 자산 절취 사건은 은행 비즈니스의 근간인 신뢰와 신용을 뒤흔드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사건은 지난 10월 대여금고의 내용물이 다르다는 고객 상담을 통해 알려졌다. 은행 조사 결과, 2020년 4월부터 지난 10월까지 도쿄도 내 두 곳의 지점에서 창구 업무 책임자인 40대 여성 간부 A씨가 절도를 저질렀다. A씨는 절도 사실을 인정한 뒤 해고돼 은행은 전 직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A씨는 대여금고 관리 책임을 맡은 위치에 있었고, 지점에 보관 중이던 예비 열쇠를 사용해 60여명의 고객 대여금고를 무단으로 열어 현금 등 고객 자산을 훔쳤다. 피해금액은 10억엔(93억원) 이상으로만 알려졌으며 단독범행으로 알려졌다. 대여금고 은행의 지점 등에 있는 금고내의 박스를 대여하는 서비스로, 고객이 귀중품을 보관할 때 등에 이용한다. 유가 증권 외 예금 통장이나 권리서, 보석 등의 귀중품을 보관한다. 연간의 사용료는 박스의 사이즈에 따라 1만 5000엔에서 3만엔 정도다. 은행의 영업일이라면 고객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 미쓰비시UFJ은행에서는 전국 약 300개 지점에서 운영 중이며, 약 13만 건의 계약이 체결돼 있다.
◆40대 직원이 4년간 100억 빼네
대여금고 열쇠는 고객과 은행이 각각 갖고 있었다. 은행 측은 고객이 열쇠를 분실할 경우를 대비해 여분의 열쇠(스페어 키)를 제작해 보관하고 있었는데, A씨는 이 스페어 키를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다. 스페어 키는 봉투에 넣어 고객과 관리자의 도장이 찍힌 상태로 보관된다고 한다. 봉투를 열면 흔적이 남아야 하지만, A씨는 봉투를 교묘하게 개봉해 열쇠를 반출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측은 "봉투가 훼손됐는지 확인한다고 돼 있지만, 확인 방법이 구체적이지 않았다"고 했다. 도장의 대조나 신고된 인감의 확인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A씨는 훔친 금품을 개인적인 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은 현재 피해 고객에게 약 3억 엔을 보상해줬고 향후에도 피해 보상을 이어갈 예정이다. 피해규모는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불어날 전망이다. 한 지점에서 1700명의 고객에게 대여금고 확인을 의뢰한 결과, 대략 70%의 고객이 지점을 찾아와 직접 확인했고 수십명으로부터 피해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신청이 있었다고 한다.
◆거세진 책임론에 사퇴여부는 미정
은행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의 원인은 ▲절차·규칙 및 점검 체계의 문제점 ▲시설 관리의 문제점 ▲지점 운영 및 내부 관리의 문제점 등을 발견했다고 했다. 재발방지책으로 ▲대여금고 관련 제반 절차 검토 및 관리 체계 강화 ▲직원의 동태 관리 및 지점 내 상호 견제 체계 강화 ▲본부 차원의 모니터링 체계 강화 ▲직원들의 법령 준수 의식 재확립 등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대여금고 예비 열쇠를 지점에서 관리하지 않고, 내년 1월 중에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한자와 은행장은 자신을 포함한 경영진의 사퇴 여부와 관련해서는 "책임을 명확히 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며 말을 아꼈다. 일본에서는 초대형 은행에서 황당한 절도 사고가 발생하자 은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유명 만화가는 16일 기자회견 이전에 자신의 SNS에 "절도를 벌인 은행원을 11월 14일에 징계 해고했는데 아직 범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다(일본에에서는 용의자여도 실명을 공개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메가뱅크에서 이런 거액의 도둑질이 일어났는데 아무런 설명이 없는가"라고 따졌다.
◆‘한자와 나오키’는 폭발적 시청률 vs 한자와 은행장 현실은 초대형 금융사고
‘한자와 나오키’는 일요일 저녁 황금 시간대에 편성된 TBS 일요극장에서 2013년 3분기와 2020년 3분기에 각각 시즌1과 시즌2가 10화 분량씩 제작 및 방영됐다.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가 원작으로 메가뱅크인 옛 산업중앙은행(현 도쿄중앙은행)에 입사한 한자와 나오키가 은행 조직 내의 부정과 비리, 파벌 싸움에 맞서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나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당한 만큼 갚아준다! 배로 갚아주마!", "중요한 것은 감사와 보은이다."라는 대사가 유명하고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일본 내에서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 내에서는 작가가 근무했던 곳이 미쓰비시은행이어서 드라마 속 은행이 미쓰비시UFJ은행을 모델로 했다는 얘기가 많다. 한자와 은행장은 2021년 4월 취임하면서 화제가 됐다. 한자와 나오키의 모델이 된 은행에 한자와 은행장이 취임해서다. 은행장 직전에는 상무를 맡았는데 부행장과 전무 등 13명의 상급자를 제치고 은행 역사상 최초로 상무에서 은행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이다. 더구나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자와 1988년 미쓰비시 은행 입사동기이다. 하지만 작가와 은행장 모두 일면식은 없고 한자와라는 드라마 주인공 이름도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작가는 전했다.
미쓰비시UFJ금융그룹(MUFG)은 일본의 3대 메가뱅크(미쓰비시UFJ, 스미토모미쓰이, 미즈호) 가운데 자산 규모와 시가총액 측면에서 일본내 가장 큰 금융그룹이다. 1997년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도쿄미쓰비시은행과 2000년 산와은행과 도카이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UFJ은행이 2006년에 서로 합병하면서 현재의 MUFG가 탄생했다. MUFG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위기에 놓인 모건스탠리 유상증자에 참여해 경영권을 일부 확보하고, 2012년에는 JP모건체이스로부터 모건스탠리 지분을 추가 인수해 현재 모건스탠리의 최대주주다. MUFG의 자산은 한화 3800조원으로 한국 1위 은행의 7배 수준. 직원은 3만1756명이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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