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내면의 슬픔, 외로움, 분노 등의 감정을 달래주고 해소해주기도 하지만 특정 시대와 사건을 담아내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데 역할하기도 한다. 특히 억압적인 상황에서는 불의에 맞서는 저항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투쟁의 현장에서 민중가요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
"긴 밤 지새우고"로 시작하는 '아침이슬'은 김민기가 작사·작곡해 1971년 발표했다. 새벽녘에 맺힌 이슬을 간결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로 표현해 담아냈지만, 1975년에 돌연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이후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7 내란으로 탄생한 제5공화국 시절까지도 아침이슬은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가사 중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른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긴 밤'(독재)이 지나고 나면, 밝은 아침(자유와 민주주의)이 올 것이라는 의미로 노랫말이 읽히며, 검열과 탄압 속에서도 아침이슬은 널리 퍼져나갔다. 아침이슬은 금지할수록 저항의 상징이 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아침이슬은 이한열 열사 장례식에서 100만 군중과 함께했다. 지난 7월, 향년 73세로 별세한 작곡가 김민기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백만명이 다 각자의 마음으로 간절하게 불렀다. 그때 생각했다. 이건 이제 내 노래가 아니구나."
이후 '아침이슬'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집회와 시위에서 민중가요로서 역할했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2007년 발매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2024년, 새로운 민중가요로 부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촛불 집회 현장에서다.
국내 대표 음원 플랫폼 멜론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을 기점으로, 일주일(12월3~9일)간 '다시 만난 세계' 청취자 수는 직전 일주일보다 23% 늘었다. 17년 전 노래가 역주행하며 인기를 끈 데에는 계엄 사태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시위 현장에서 '다시 만난 세계'를 필두로 한 다양한 K팝이 민중가요로서 역할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탄핵 플레이리스트'가 공유되기도 한다. '다시 만난 세계' 외에도 로제의 '아파트', 슈퍼주니어의 '쏘리쏘리',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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