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는 27일(현지시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발부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과 관련해 네타냐후 총리가 '면책권'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네타냐후 내각이 프랑스와 미국이 제안한 레바논 휴전안을 받아들인 직후 갑작스레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프랑스 외무부는 이날 이스라엘은 ICC 회원국이 아니라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 외무부는 성명에서 "ICC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에 부여된 면책특권과 관련해 국제법상 의무와 상충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면책 특권은 네타냐후 총리와 관련 장관들에게 적용돼야 한다"며 "ICC가 우리에게 그들을 체포해 넘기라고 할 경우 (면책권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CC는 지난달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드 전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등을 대상으로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이에 프랑스 정부도 ICC 규정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었다.
특히 프랑스의 주장은 네타냐후와 마찬가지로 ICC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체포 영장이 발부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기존 입장과도 상충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앞서 ICC는 푸틴 대통령의 자국 방문에도 불구하고 그를 체포하지 않은 몽골에 대해 ICC 회원국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결했고, 당시 프랑스 외무부는 "면책권을 없애기 위한 (프랑스의) 오랜 헌신에 따라" ICC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가디언은 갑자기 바뀐 프랑스의 주장이 '국제법상 의무와 상충되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없다'라고 명시된 로마법 제98조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제27조에는 고위직 면책을 두고 '법원이 그러한 사람에 대한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선 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ICC는 2019년에도 제98조가 '면책권의 근거'가 아니라 영장 집행 요청 방식을 안내하는 '절차적 규칙'이라고 결론 내렸었다.
국제사회 안팎에서는 비판이 쏟아진다.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는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이 "ICC 회원국으로서 프랑스의 의무에 반한다"며 "ICC 규정의 원칙은 푸틴이나 네타냐후를 포함해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의 데이비드 라미 외무부 장관은 "명명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려고 한다면 나는 법원에 회부할 것"이라면서 이를 '의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녹색당 대표인 마린 통델리에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 게시글에서 "수치스러운 일" "멋진 뒷걸음질"이라며 이러한 결정이 프랑스와 이스라엘 지도자 간 합의의 결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는 또다시 네타냐후의 요구에 굴복하며 국제정의보다 그를 택한 것"이라며 "어제 프랑스와 미국이 발표한 레바논 휴전 공식 발표문에서 프랑스가 언급되기 위한 '거래'였을 것"이라고 썼다. 또한 "푸틴이 유네스코(UNESCO)를 방문해도 체포되지 않을 것이란 뜻이냐"라며 "역사적으로 매우 심각한 실수"라고 덧붙였다.
프랑스24는 확인되지 않은 언론 보도를 인용해 앞서 ICC의 체포영장 발부 소식에 격노한 네타냐후 총리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로 분노를 표하고 집행에 나서지 말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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