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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삼성전자처럼 망해보고 싶다"[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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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기 영업이익만 9조1800억원
관건은 슈퍼 갑에서 을로 자세 바꿀 수 있나

"나도 삼성전자처럼 망해보고 싶다"[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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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삼성전자가 위기다, 심지어 이렇다 망할 것 같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삼성전자가 망하면 나라도 망한다는 이야기도 따라붙는다. 그럴 때 말씀드린다. "삼성전자처럼 망해봤으면 좋겠어요." 회사 3분기 영업이익이 9조1800억원이다. 올해 1분기 한국증시 상장사의 43.8%가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다. 쉽게 말해 한국 주요 기업 절반 가까이가 순이익을 못 낸다. 이런 기업이 위기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분기에 9조원을 버는 위기를 한 번이라도 겪어보고 싶을 것이다.


나라 걱정할 문제도 아니다. 삼성전자가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요즘 뜨거운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실적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인 트랜스포드는 올해 세계 HBM 시장 점유율 1위를 하이닉스(52.5%)로 봤다. 하이닉스는 3분기 사상 최대인 7조300억원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전자 예상 점유율은 42.4%. 삼성전자가 못한 것이 아니라 만년 2등 하이닉스가 잘한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한국기업 점유율이 94.9%로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에서 낸 영업이익을 합치면 주식회사 한국 반도체는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냈다고 봐야 한다.


연구개발(R&D)비를 보면 삼성전자가 진정한 위기를 맞았다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짙어진다. 삼성전자는 작년 사상 최대인 28조3397억원을 R&D에 퍼부었다. 올해 3분기까지 R&D 비용은 25조7400억원으로 이미 작년 이상이다. 정말 위기라면 R&D에 쓸 돈이 없다.


진짜 문제는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부품 업체는 이른바 을이다. 고객인 제조업체가 원하는 물건을 뭐든 만들고, 덤으로 간도 쓸개도 다 빼줘야 한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30년간 지배해 온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달랐다. 똑같은 표준 규격 제품을 만들면 표준 가격에 고객이 사가는 구조다. 삼성전자는 가장 품질이 좋은 제품을 기본적으로 경쟁 업체와 같은 가격에 팔았다. 삼성전자 제품이 불량도 적고 내구성도 좋아 전자제조업체 입장에선 기왕이면 삼성전자 제품을 사야 했다. 돈 많은 대형 업체가 아니면 삼성전자 고객 리스트에 오르기조차 힘들었다. 을인 부품업체가 갑 노릇을 했다.


HBM은 이런 표준 제품이 아니다. 닌텐도같이 게임기나 엔비디아 같은 그래픽처리장치(GPU) 제조업체들이 일부 사용하는 특수, 비주류 제품이다. 몇 년 전까지 전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 이하였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대량생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2등인 하이닉스는 생각이 달랐다. 충분히 도전해볼 만했다. 그래서 하이닉스는 HBM 분야에서 삼성전자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다. 선택과 집중의 승리다. 그런데 이 HBM이 표준 제품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효자 상품으로 거듭났다.


표준 제품 중심이었던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HBM 같은 특화제품 위주로 변하고 있다. 엔비디아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새 인공지능(AI) 칩에 필요하다며 새 반도체를 만들어 달라고 메모리 반도체 업체에 손을 내민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전처럼 무시하기 힘들다. 가만히 있다가는 제2의 HBM 사태가 터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위기일까. 꼭 그런 건 아니다. 제품의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제품이 질적으로 달라져 전통의 강자들이 힘들어하는 업종이 있다. 바로 자동차 업계다. 전통 자동차 업체는 위기다. 자동차의 핵심인 엔진이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간 쌓아 온 엔진 기술이 갑자기 쓸모가 없어질 상황이다. 밖에서 보면 같은 자동차지만 핵심, 혹은 본질이 달라졌다. 하지만 HBM은 좀 다르다. 핵심이 현재 주류 상품인 D램이다. D램을 몇겹으로 쌓아 놓고 서로 신호를 주고받도록 만든 제품이 HBM이다. 쉽게 말해 껍데기, 포장은 달라졌지만 핵심 엔진이 같은 제품이다. D램 최강자인 삼성이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물론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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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부근 삼성전자 고문은 대표이사 시절 새벽 4시면 출근해 회사 체력단련장에서 달렸다. 옆에는 직속임원들이 같이 뛰고 있었다. 최지성 전 부회장은 새벽 몇 시에 이메일을 보내도 바로 답장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직원들이 부회장에게 제일 궁금한 게 잠을 언제 잘까였다. 당시 위기란 말이 나오면 삼성전자 연구원들은 퇴근을 하지 않았다. 사장들은 연휴에는 쉬라고 문을 잠가놓으면 직원들이 담을 넘어 들어와 일한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지금 삼성전자 사장들은 직원들이 일을 안 한다고 한다. 직원들은 경영진이 무능하다고 한다. 이 상황이 길어지면 진짜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




백강녕 디지털콘텐츠매니징에디터 young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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