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이렇게 금융투자 사고가 많이 나죠?"
금융감독원에서 근무하다 퇴직해 민간 금융기관에서 감독 업무를 맡고 있는 금융권 원로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돈 만지는 사람이 섬처럼 혼자 있으면 사고가 난다."
돈을 다루는 업무에서 사고는 계속 일어난다는 게 오랜 기간 감독 업무를 해 온 그의 경험칙이다. 최근 들어 유독 금융투자 사고들의 규모가 크고, 빈발하는 것은 지켜보는 눈이 없어서 그렇다는 해석을 내놨다.
해당 부서가 ‘외딴 섬’처럼 분리돼 운영되거나, 한 지점당 인력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직원들이 서로 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지켜볼 여력이 없을 때 사고 발생 위험이 커진다. 디지털의 도움을 받아 개개인이 ‘섬’처럼 일하는 세태가 금융 사고 빈발에 일조했다는 해석이다. 내부통제·처벌강화, 인공지능을 활용한 위험관리 등의 해답을 떠올렸는데, 정반대로 아날로그한 분석에 허를 찔렸다.
올해는 유독 은행과 증권사에서 금융투자 사고가 잦았다. 우리은행 대규모 부당대출 사건에 이어 신한투자증권에서는 내부 직원이 지난 8월부터 최근까지 운용 목적을 벗어난 매매를 시도하다 1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냈다. 코스피 지수가 폭락한 이른바 ‘검은 월요일’에 큰 손실을 보고, 이를 회복하려고 무리한 거래를 계속하다 손해를 더 키운 것으로 전해진다. 일반적인 증권사 업무와는 조금 다르게 상장지수펀드(ETF)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부서에서 발생한 사고다.
"조직이 개인을 너무 몰아붙이면 사고 친화적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 원로는 금융투자 사고 빈발의 또 다른 무형적 원인으로 과도한 성과주의를 꼽았다. 개인이 착복하는 금융투자 사고도 있지만, 직원들이 성과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무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최근 고려아연 경영권 방어를 도운 증권사들이 위기에 처한 것도 성과를 위해 적법과 위법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다 생긴 일로 볼 수 있다.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유상증자와 관련해 금감원의 현장 검사를 받고 있다. 당국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공개매수로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면서 차입금을 유상증자로 상환할 것이라는 계획을 함께 세웠다면 부정거래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만일 미래에셋과 KB증권이 이런 부정거래를 알고 도왔다면 자본시장법상 방조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은행권에선 실제 개인에 대한 구속도 이뤄졌다. 부당대출 의혹을 받고 있는 전직 우리은행 부행장이 검찰에 구속됐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금융투자 회사에 횡령하려고 취직하는 사람은 없다. 조직과 당국은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됐는지 그 바닥의 심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물론 개인이 스스로 직업윤리를 세우고, 조직과 당국이 촘촘한 제도와 엄격한 처벌을 통해서 사고를 막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들의 돈을 받아 관리하는 금융투자사라면 조직이 한 개인을 ‘횡령과 배임의 섬’으로 몰아넣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
박소연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mus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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