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금융지주 및 은행들이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리는 책무구조도 조기제출로 분주하다. 이는 당초 책무구조도 제출에 미온적이던 분위기와는 180도 달라진 것이다. 금융당국이 이달 말까지 시범운영 신청 금융사에 대해서는 제재 수위 감경 등 '당근'으로 유인하면서다. 금융사들은 책무구조도 조기 제출로 빈번한 금융사고에 대한 내부통제 의지를 다진다는 구상이다.
30일 KB금융지주와 KB국민은행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금융감독원에 책무구조도를 제출, 시범운영에 참여한다. 주요 금융지주도 이달 말까지 금융감독원에 책무구조도를 제출해 시범운영에 참여한다는 구상이다. 주요 금융지주 모두 마무리 점검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종희 KB금융지주 회장은 "책무구조도 운영은 임직원 본인과 고객보호를 위한 기본 업무이며, 금융회사의 본질적 업무를 수행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내부통제 장치"라며 "KB금융은 충실한 책무구조도 운영을 통해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기본 체계를 갖추고 고객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5대 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이 가장 먼저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지난달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신한은행에 이어 DGB금융지주와 iM뱅크는 지난 21일 동시 제출을 마쳤다. 지주와 은행이 동시 제출한 건 처음이다. 이어 하나은행은 지난 25일, 우리은행은 지난 28일 제출을 마쳤다. NH농협은행도 이달 말까지는 제출을 완료해 시범운영에 참여할 계획이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 임원들의 구체적인 책무와 내부통제 책임영역을 사전에 지정한 문서로, 횡령 등 금융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는 역할이다. 대표이사(CEO) 등 임원의 징계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불린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 7월 책무구조도 도입 등을 담은 지배구조법을 시행하며, 11월 초부터 내년 1월 초 본격 도입까지 시범 운영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은행과 금융지주는 늦어도 내년 1월 2일까지, 금융투자 및 보험업(자산총액 5조원 이상)·저축은행(자산총액 7000억원 이상)은 내년 7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제출해야 한다.
당초 금융사들은 책무구조도 제출에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이달 31일까지 책무구조도 시범운영을 신청하는 금융사에 대해서는 시범운영기간 중 임직원의 법령 위반을 자체 적발하거나 시정할 경우 제재 수위 감경 및 면제하는 등 '당근'책으로 유인하며 참여를 독려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금융당국이 책무구조도 도입이라는 강수를 두게 된 건 횡령 등의 금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내 금융업권 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발생한 금융사고는 총 463건, 규모는 6616억7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4097억500만원(264건)으로 그 규모가 가장 컸다. 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이 1421억1300만원(30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KB국민은행 683억2000만원(36건), 경남은행 601억5800만원(6건) 순이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라는 게 사고가 생기면 직을 내려놓으라는 건데 사실 어느 금융사가 참여하겠다고 먼저 나서겠냐는 게 당초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은 데다 하나둘 시범운영에 참여하는 금융사들이 나오면서 이젠 참여를 안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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