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민심에 달렸다
두산그룹이 로보틱스와 에너빌리티 합병비율을 기존 주주에게 유리하도록 산정하며 '소액주주 달래기'에 나섰지만 금융감독당국의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국이 증권신고서 정정 요구 당시 예시로 든 현금흐름할인법·배당할인법이 아닌 기존의 시가 중심의 평가방식을 두산그룹이 고수했기 때문이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두산로보틱스는 지난 21일 회사분할합병 관련 정정 증권신고서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22일 추가 정정 신고서를 제출했으나 이는 신주 상장예정일 단순 기재 오류에 따른 것이다.
바뀐 신고서에 따르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에너빌리티의 합병비율은 종전 1대0.031에서 1대0.043으로 높아졌다. 두산은 에너빌리티 분할신설법인이 보유한 두산밥캣의 지분 가치를 시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율 43.7%를 반영한 방식으로 산정했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이사 사장은 "합병 비율은 두산밥캣 시가가 저평가됐다는 시장 의견을 반영해서 시가에 약 43%의 프리미엄을 추가해서 비율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금감원은 두산 측에 합병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면서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과 내용, 시너지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밥캣 지분을 보유한 분할 신설법인에 대한 가치평가 방법과 관련해 현금흐름할인법(DCF), 배당할인법(DDM) 등 미래 수익 효과에 기반한 모형을 적용하라는 내용 등을 지적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두산이 신고서를 통과시키기 위해 당국의 지적사항을 최대한 수용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런 전망이 빗나간 셈이다.
다만 두산은 이런 방식을 고수한 배경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덧붙였다. 두산은 두산로보틱스 정정 증권신고서에서 "두산밥캣 주식의 가치를 산정함에 있어 상장주식으로서 거래되고 있는 시가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점, 현금흐름할인법 또는 배당할인법 적용 시 미래의 매출 및 영업이익의 추정 등을 포함한 많은 가정사항이 적용되며 이러한 가정사항들은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 결과값 또한 평가인의 판단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현금흐름할인 모형 등은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상장 자회사를 둔 비상장법인의 특수한 상황이 감안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외부평가기관인 회계법인의 평가의견서도 정정해 첨부했다. 안진회계법인은 "피합병법인이 보유한 두산밥캣에 대한 지배주주지분 가치 산정 시에 두산밥캣의 시가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법으로 판단된다"며 "국내 경영권 이전이 수반된 상장기업의 거래 사례 등을 분석해 양사간 합의에 따라 반영된 경영권 프리미엄을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으로 가치평가를 해보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두산에서도 이번 신고서에 그렇게(시가 중심 방식을) 한 이유를 상세히 기재해놨다"며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수긍할 수 있을지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날 두산밥캣은 전장 대비 7% 내린 4만500원으로 마감했다. 두산로보틱스도 5.17% 내린 6만7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두 종목 모두 앞서 3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지속하다가 이날 하락 전환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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