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무섬마을 대표하는 건물들…원형 잘 보존돼
영주 무섬마을을 대표하는 만죽재고택과 해우당고택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국가유산청은 두 고택을 각종 생활유물과 함께 '영주 만죽재·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이란 이름으로 엮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고 7일 예고했다.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영주 무섬마을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집성촌이다. 만죽재고택은 현종 7년(1666)에 반남박씨 박수(1641~1729)가 무섬마을에 입향해 지은 고택. 입향조(마을을 가장 먼저 개척해 정착한 조상)부터 13대에 이르기까지 360년간 원형이 잘 보존됐다.
평면 형태는 'ㅁ'자다. 안채와 사랑채, 부속채 등이 하나로 연결됐다. 조선 중·후기 상류 주택을 대표하는 유교적 종법 질서의 표현 방법으로, 경북 북부지방의 뜰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고택 뒤에는 교육과 시문학 장소로 사용된 섬계초당이 있다. 높은 곳에 지어져 내성천과 무섬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고택에는 만죽재 현판과 원본 글씨, 문방사우(종이·붓·먹·벼루), 여물통, 통나무계단 등 진귀한 생활 민속유산이 있다. 대표적 유산으로는 역대 혼서지와 항일격문집, 규방가사집, 호구단자, 승경도 등이 꼽힌다. 혼서지는 전통 혼례 때 신랑댁에서 신부댁에 보내는 혼인문서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자기 호(집)의 상황을 적어서 관에 제출한 문서, 승경도는 말판에 관직 도표를 그려놓고 주사위를 던져 가장 먼저 오르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다.
해우당고택은 선성김씨 입향조인 김대(1732~1809)의 손자 김영각(1809∼1876)이 1800년대 초에 건립한 건물이다. 아들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중수한 뒤 해체나 수리 없이 원형이 잘 보존됐다. 김낙풍은 흥선대원군의 친구로 유명하다. 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냈다.
지금 뜨는 뉴스
이 고택 역시 'ㅁ'자 형태다. 안방에서 태어나 목방, 작은사랑, 큰사랑, 빈소방으로 옮겨가는 생애주기와 생활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침수가 잦았던 무섬마을의 환경적 결점을 지혜롭게 해결한 점도 눈에 띈다. 장독 보관을 위한 장고방을 따로 뒀으며, 성주단지(집을 수호하는 가신인 성주를 모셔두는 단지)를 부엌이나 마루가 아닌 높은 다락에 뒀다. 높은 다락을 많이 만들어 수납공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