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한국 전체 살인 범죄 건수와 맞먹어
갱단정보 알린 주민 색출에 무작위 사살
갱단이 장악해 무법천지가 된 카리브해의 섬나라 아이티에서 올해 3600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27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아이티 인권 상황’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16쪽 분량의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티에선 갱단원의 폭력으로 사망, 부상, 납치 등 피해가 이어지며 올해 1월 이후 지금까지 최소 3661명이 사망했다. 이는 2018∼2022년 한국에서 발생한 살인 범죄 건수(3931건)와 맞먹는다.
미주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는 최근 수년간 갱단 연합체인 G9, 지-펩(G-Pep) 등의 분쟁으로 치안이 악화했다. 특히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당시 대통령이 숙소에서 암살당하고 아리엘 앙리 총리가 사임하면서 갱단 폭력에 따른 치안 악화와 빈곤 속에 행정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황이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범죄 조직에 효과적이고 지속해서 대응하려면 적절하고 충분한 장비와 인력이 필요하다”면서 국제사회에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폭력 사태를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갱단들은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아이티 국민은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개입에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초 미국 CNN, CBS 방송 등은 “유엔은 갱단이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80%를 장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현재 포르토프랭스에서는 경찰과 갱단 간의 전투가 수시로 벌어지고 있고 주민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도로는 텅 빈 상태다. 도시 외곽으로 가는 도로나 항구로 통하는 길은 갱단에 의해 막혔고 포르토프랭스 국제공항도 폐쇄됐다. 주요 식료품점에서는 식품이 동났고, 주유소에서는 연료가 거의 바닥난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은 혈액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
유엔은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비롯해 그간 갱단 활동이 비교적 드물었던 서남부 지역에서도 심각한 폭력 및 인권침해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보고서에는 갱단들이 총격으로 주민을 무작위로 사살하고 갱단 정보를 알린 주민을 색출해 대낮에 살해하거나 시신을 훼손하고 불태우는 등의 상황도 담겼다.
남성 갱단원들이 여성 주민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질러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심는 경우도 있다고 유엔은 보고서에 적시했다.
현재 아이티에는 케냐가 주도하는 다국적 경찰력이 현지 군·경과 함께 치안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전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내년 1월까지 2500명을 배치하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드가르 르블랑 아이티 과도위원장은 “다국적 경찰 작전을 유엔 평화유지 임무로 전환하는 안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고려해 달라”고 촉구했다.
최승우 기자 loonytun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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