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청 이순홍 팀장, 강상아·송민규 주무관
'전국 최초' 자발적 문화유산 전수 조사 통해
성북구 소재 사적지 10만㎡ 지목·필지 정리
잘못된 지목 바로 잡고 사적지 관리·행정효율 높여
"전국적 조사 필요해" 국가유산청에 개선 안 제시해
![왕릉은 묘지? 한양도성은 대지? 60년 만에 사적지 제 이름 찾아준 공무원들[별별행정]](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4090211474214517_1725245262.jpg)
[별별행정] 문제 해결과 정책 집행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방법을 제시하거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정으로 공공서비스 품질을 향상 시킨 사례와 인물을 소개합니다.
묘지(墓地)와 능(陵)은 사람이 매장된 장소를 의미하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다. 묘지는 사람이 사망한 후 매장되는 일반적인 장소를, 능은 왕족의 무덤으로 역사·문화적 상징성을 가진다. 총구간 18.6km 길이의 한양도성은 600년 서울 역사의 상징이자 서울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지목(地目)이 사적지로 관리돼야 한다.
성북구청 부동산정보과 이순홍 부동산행정팀장은 당연한 사실이 적용되지 않은 공적 서류의 불일치에 대해 평소 의문을 품어왔다. 이 팀장의 일이 부동산토지·지적행정 분야 업무다 보니 이런 문제가 하나둘씩 눈에 띄었고, 팀원인 강상아·송민규 주무관과 올여름 작정하고 문화유산 일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범위는 성북구 관내 지역 문화유산 사적지 전체. 총 97개 필지, 10만㎡에 달하는데 조사를 끝내고 보니 놀랍게도 이 많은 사적지의 지목이 국가문화 유산의 지정 목적에 맞게 돼 있지 않았다. 사적지로 돼 있어야 할 토지가 제각각의 지목으로 돼 있었던 것이다.
1963년 사적지로 지정된 한양도성과 선잠단지(조선시대 역대 왕비가 누에신에게 제사 지내던 곳)는 대지, 임야, 구거(도랑), 유지(유수지) 등 사적지 지정 이전 지목 그대로였다. 왕릉인 의릉(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무덤)과 정릉(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은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됐지만, 여전히 일반적인 매장지 지목을 뜻하는 묘지로 돼 있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살았던 심우장은 지번이 잘못돼 있었다. 한 단위로 관리하는 토지가 여러 개의 필지로 쪼개져 있어 관리효율을 떨어뜨리는 사례도 여러 건 발견됐다.
성북구는 이 팀장의 조사 결과를 근거로 지난달 바꿀 건 바꾸고, 고칠 수 있는 걸 고쳤다. 의릉과 정릉, 선잠단지와 성북동별서(성락원, 조선시대의 별장)의 지목을 모두 사적지로 변경했다. 임야, 대지로 돼 있던 성북구 관내 한양도성 백악·낙산 4km 구간 28개 필지 지목도 대지와 임야에서 사적지로 변경하고, 성곽부지 41개 필지를 13개 필지로 합병했다. 재산관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게 무슨 이득과 의미가 있을까. 왕릉은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인데 일반 묘지로 등재할 경우 대외적인 국가유산으로의 위상이 떨어진다. 사적지가 묘지, 대지, 도로, 구거, 유지, 임야 등으로 등재돼 있을 경우 지목이 현실과 동떨어져 체계적인 국·공유 재산관리가 어렵다. 이런 내용이 국가 공적 장부의 공신력을 저하시킨다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이 팀장은 “사적지 관리부서에서 행정재산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설인데 지목이 잘못 등재될 경우 도로와 구거는 국토교통부에서, 대지는 기획재정부에서, 임야는 산림청에서 각각 관리하게 돼 행정효율이 크게 떨어진다”고도 했다.
1개의 필지로 관리해도 될 게 여러 필지로 나뉘어 있으면 사적지 전체 경계를 파악하기도 불편하다. 여러 필지를 시스템에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재산관리가 불편하고, 한 건으로 발급해도 될 대장과 도면 발급도 여러 건 발급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성북구는 이참에 임야도에 등록된 소축척(1대 3000) 6개 필지(1만2963㎡)를 대축척(1대 1200) 지적도로 전환하고, 한양도성 사적지 부지 중 기재부에서 일반재산으로 관리하던 3개 필지(5747㎡)를 국가유산청(옛 문화재청)에서 행정재산으로 관리하도록 안내했다.
그런데 이게 전국에서 성북구만의 일일까. 한양도성의 다른 구간은 물론 헌인릉, 태릉 등 전국의 왕릉, 전국 각지의 다른 사적지 지목도 제대로 변경돼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 팀장의 설명이다.
성북구는 이번에 자체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지난달 28일 국가유산청에 전국 단위 사적지 등록 실태 및 관리 개선의 필요성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성북구 사례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사적지 지목 바로잡기 사업’ 추진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이다. 성북구가 이번에 조사한 사적지의 재산관리기관은 국가유산청과 서울시, 서울시교육청, 국토교통부,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다양하다.
이승로 구청장은 “이번 사업은 전국 최초로 지자체가 자발적으로 주도해 문화유산 관리기관 간 협업체계를 구축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전국 단위 사적지 관리개선 방안을 제시한 특수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지목(地目) - 토지 용도에 따라 법으로 나눠 놓은 게 지목이다. 대지, 임야, 논, 밭 등 28개 종류로 나누는데 어떤 지목이냐에 따라 해당 토지의 용도와 가치가 달라진다.
김민진 기자 ent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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