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손가락 실수로 잘랐다" 허위 답변…日 최초 심문기록 공개

'단지동맹' 동료 보호위해 허위 답변
"냉철한 지식인보다 행동가 면모 보여"

안중근 의사를 최초로 심문한 일본인 외교관의 친필 기록이 발견됐다.

15일 조선일보 등에 따르면 최영호 82갤러리 대표는 "지난 3월 일본 경매에 나온 오노 모리에 친필 원고와 사진 7점 등 일괄 자료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이미지출처=국가보훈처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직후 러시아 영사관으로 압송돼 밀레르 검사에 심문받았다. 러시아는 이날 오후 10시쯤 안 의사의 신병과 취조 기록 원본을 일본 하얼빈 총영사관으로 넘겼다. 당시 가와카미 도시하코 하얼빈 총영사도 안 의사의 총탄에 맞아 입원했기 때문에 잉커우 영사관에서 오노 모리에가 하얼빈으로 파견됐다.

오노 모리에 친필 회고록. 원고지 14장 중 첫 장. [사진 = 최영호 82갤러리 대표]

오노는 10월 27일 오후 하얼빈 총영사관에 도착해 안 의사를 심문했다. 그는 1909년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안 의사를 심문한 기록과 당시 정황을 정리한 글을 1910년 3월 작성했다. 해당 글은 '큰 별이 지다'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에 달한다.

10월 27일 오후 하얼빈 총영사관에 도착한 오노는 "하얼빈시 일대에 주범 안중근의 동료들이 잠복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어 전원 일망타진으로 체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안중근을 러시아 관헌에서 인계받아 총영사관 지하 구치소에 감금했다"고 했다.

오노가 안 의사에게 이토의 암살 동기를 묻자, 안 의사는 "한국을 망친 역적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 새끼손가락(실제 약지) 절단 이유를 묻자 "나는 원래 북한국의 산 사냥꾼이었는데, 그 당시 토끼를 요리할 때 실수로 손가락을 잘랐다"고 답했다.

이는 '단지동맹' 동지를 보호하기 위한 허위 답변이었다. 안 의사는 앞서 2월 7일 김기룡·황병길·백규삼 등 11명 동지와 함께 러시아 크라스키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왼손 넷째 손가락(무명지)을 끊었다.

오노 역시 "그 후 상당한 시일이 지났음에도 상처가 생생한 사실로 비추어 볼 때 답변이 엉터리임을 알 수 있었다"고 적었다.

이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안 의사가 담배를 주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는 대목도 나왔다. 오노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통역을 통해 '당신은 담배를 피우는가?'라고 안 의사에게 묻자 '매우 좋아한다'며 비로소 입을 열었다는 것이다.

오노는 이후 상황을 상세히 기록했다. "좋아하면 한 대 주겠다 했더니 '만약 줄 생각이 있으면 쓸데없는 말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빨리 주라' 하므로 순간 부아가 나서 한 개비를 집어 던졌는데 (안이) 받지 못해 마룻바닥으로 떨어졌다"며 "안은 곧바로 몸을 구부려 수갑을 찬 채 담배를 주워, 궐련 담배 끝을 이빨로 잘라내며 불을 붙여 달라고도 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이를 씹기 시작하더니 '생큐'라고 한마디를 흘렸다"고 했다.

이에 오노가 "'너는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기에 '지금 네가 말한 한마디가 영어가 아닌가' 하자 '아니, 일본어'라고 했다"며 "그 말이 왜 일본어라고 생각하냐고 반문하자 '내가 예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선박의 짐꾼으로 종사하고 있을 때 동료 중에 일본인도 많았는데 그들은 서로에게 사의를 표할 때 생큐라고 말했으므로 나는 이 말이 일본어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안중근 연구자인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미조부치 검사가 진행한 10월 30일 1차 신문은 자료가 남아 있는데 그 이전 오노의 취조는 처음 보는 내용"이라며 "거사 직후인 27~29일의 공백을 메워주는 자료로 의미가 크다"고 평했다. 이어 "안 의사는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뤼순 감옥에서도 일본인 감수들과 필담으로 대화했다"며 "냉철한 지식인 스타일이기보다 전격적으로 반응하는 행동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고 분석했다.

오노 모리에의 기록에는 하얼빈 총영사관의 내부 구조도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었는데, 현재 초등학교로 바뀐 하얼빈 총영사관의 구체적인 내부 환경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소진 기자 adsurdis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