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대북 확성기' 꺼내자 "오물풍선 살포 멈추겠다"

정부, 확성기 거론하자 北 도발 중단 선언
"오물 살포 잠정 중단…삐라 날리면 재개"
北, 3500개 살포 주장…軍 식별 1000개

우리 정부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응해 '대북 확성기' 카드를 꺼내자 북측이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다만 남측에서 다시 북한으로 삐라(전단)를 보낼 경우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적으로 살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은 2일 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우리는 한국 것들에게 널려진 휴지장들을 주워 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며 "우리는 국경 너머로 휴지장을 살포하는 행동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2일 오전 인천 중구 전동 인천기상대 앞에 떨어진 북한 오물풍선 잔해를 군 장병들이 지뢰 탐지기로 확인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김 부상은 북측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해 '철저한 대응조치'라고 규정하며 "지난 5월28일 밤부터 6월2일 새벽까지 우리는 인간쓰레기들이 만지작질하기 좋아하는 휴지쓰레기 15t을 각종 기구 3500여개로 한국 국경 부근과 수도권 지역에 살포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 것들이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우리는 이미 경고한 대로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적으로 살포하는 것으로 대응하겠다"고 위협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전날 밤부터 오물풍선 살포를 재개했고, 이날 오후 1시까지 서울·경기·충청·경북 등 지역에서 720여개가 발견됐다. 지난달 28~29일 오물풍선 260여개를 남쪽으로 날린 데 이어 사흘 만에 살포를 재개한 것이다. 모두 합치면 지금까지 1000개 가까이 식별됐다. 북한의 주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정부는 '감내하기 힘든 조치'에 착수하겠다며 경고장을 날렸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오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한 뒤 브리핑에서 북한의 잇따른 대남 오물풍선 살포와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등 도발에 대해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할 것이며 추가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의 의미에 대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는 당연히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감내하기 힘든 조치'의 착수 시점에 대해서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할 것"이라며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대해 남측의 '표현의 자유'까지 운운하며 억지 주장을 펼쳤지만, 결과적으로 '대북 확성기' 카드가 등장하자 곧바로 대남 도발을 멈추겠다고 꼬리를 내린 모습이다.

확성기는 냉전시대의 유산이라 평가될 만큼 오래된 심리전 도구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 확성기와 우리 대북 확성기가 가진 성능을 비교하면 확실한 '비대칭 전력'이기도 하다. 확성기로 북한 관영매체가 보도하지 않는 외부 정보와 뉴스, 남한 가요 등을 방송하면 북한군과 주민들이 동요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우리 군은 이미 충분한 '확성기 전력'을 확보하고 있다. 합참에 따르면 군은 약 160억원을 들여 기동 확성기 16대, 고정 확성기 24세트 등 신형 확성기를 도입해둔 상태다. 신형 확성기의 가청 범위는 기동 확성기 기준 8~10㎞, 고정 확성기는 12~15㎞다. 이는 군사분계선에서 개성공단까지 방송이 닿을 정도의 성능이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