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67.8% 여가생활 TV시청
영화 제작비용·접근성 문제는 과제
'줄리는 자리에 멈춰서서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불어오는 바람에 줄리의 푸석한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린다….'
영화는 제작사 로고, 등장인물, 배경 등 화면에 비치는 모든 요소를 내레이션으로 설명해 조용할 틈이 없다. 처음 듣는 이들은 낯설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눈을 감고 영화에 집중하면 마치 소설을 읽듯 머릿속에 영화의 장면들이 하나둘 그려지기 시작한다.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상영된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 ‘풀타임’(감독 에리크 그라벨). 특이한 점이 있다면 새로운 장르가 아닌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영화’였다.
배리어프리(Barrier Free)는 ‘장벽이 없다’는 뜻으로 음성해설과 배리어프리 자막을 추가해 장애와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뜻한다. 서울역사박물관 배리어프리영화관은 올해로 10년째 배리어프리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고 있다.
배리어프리 작품을 즐겨본다는 방송인이자 시각장애인 이창훈씨(39)는 “요즘 영화들은 시공간이 전환하는 장면이 많아 듣기만 하면 놓치는 부분이 많다”며 “배리어프리 작품은 장면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해주기 때문에 일반 영화를 감상할 때보다 몰입감이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이씨에게 배리어프리 영화는 단순히 장애인이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 이상의 의미다. 그는 “장애인도 문화 콘텐츠에 접근함으로써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서 “장애가 없는 사람들도 장애인 인권에 대한 문제를 함께 마주할 수 있는 창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애인들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데는 여러 제약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2022년 장애인 25만 1277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가에 영화나 연극, 연주회 등을 관람한다고 응답한 인원은 0.1%에 불과했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는 것(67.8%)에 비하면 극명하게 낮은 수치다. 발달장애 아동의 보호자 김모씨(56)는 “발달장애인들은 갑자기 소리를 내거나 몸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연을 관람하기 쉽지 않다”며 “여가 생활은 거의 못 하고 있다”고 답했다.
배리어프리는 이런 제약을 해소하기 위해 선보여지는 작품들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 따르면 배리어프리 영화 한 편의 제작 비용은 1400만원 정도다. 외국영화의 경우 더빙 비용이 더해져 3100만원 정도까지 비용이 치솟는다. 위원회 관계자는 “제작비 문제로 다양한 영화를 만들기엔 한계가 있어 1년에 6~7편 정도만 제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됐지만, 접근성도 좋은 편은 아니다. 전국의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관은 시도별로 1~2곳에 불과하다. 상영 날짜와 시간, 개봉 영화도 극히 제한돼 있다. 실제로 한 해에 개봉하는 배리어프리 영화는 일반 개봉영화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마저도 단체상영 혹은 일부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탓에 실제 관객 수는 턱없이 적은 상황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보면 지난해 8월31일 기준으로 최근 5년간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의 전체 영화 상영 횟수(2544만2673회) 대비 배리어프리 영화 상영 횟수(3936회)의 비율은 0.015%에 불과했다. 일반 영화가 1만회 상영될 때, 배리어프리 영화는 1.5회 상영된 셈이다. 국립극단에서도 2020년부터 배리어프리 공연을 선보이고 있지만, 장애인 관람객의 비율은 5~10%로 높지 않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이동지원이나 음성 해설 등 다방면으로 편의를 도모해도 장애인들이 공연장까지 오는 것 자체가 힘든 과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솔지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은 밖에 나갈 때 누군가한테 부탁하고 도움을 받아야 하는 등 한국은 아직 장애인들이 편하게 자유롭게 돌아다니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돼야 문화생활 콘텐츠 등에 대한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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