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물감처럼 보이는 전자담배 액상
초등생 이목 끌기도…학부모는 '걱정'
액상 전자담배, 현행법상 담배 포함 안 돼
‘레몬 맛, 사과 맛, 아이스크림소다 맛.’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초등학교 인근. 알록달록 예쁘고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얼핏 보면 화장품 같기도 한 제품들이 유리창 너머 학생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보기와 다르게 이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주재료인 액상이 담긴 통이다. 이 전자담배 매장은 초등학교 정문에서 3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편의점에서도 전자담배용 액상을 볼 수 있었다. 전자담배 매장 인근 한 편의점에서는 일반 물품과 액상 담배를 함께 진열한 채 팔았다. 학부모 이수연씨(34)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넘어갈 시기에 저게(전자담배) 뭐냐고 물어보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요즘 애들이 뭐든 빨리 시도해보려는 경향이 있어서 학부모 입장에서 우려된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허서영씨(36)도 “누군가에겐 액상 담배통이 물감처럼 보일 수도 있다”며 “액상 담배도 결국 니코틴이 있는데 여기도 건강 위험 경고 그림이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닌지 의문”이라고 걱정했다.
전자담배 규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 필요
현행 담배사업법은 연초의 잎을 원료로 제조한 것만 담배로 정의한다. 연초의 잎이 아닌 부분(줄기·뿌리 등)이나 화학물질을 이용한 니코틴을 원료로 하는 담배는 현행법상 담배로 규정되지 않는 셈이다. 그렇기에 액상형 전자담배는 유사 담배임에도 담뱃갑 경고 그림 문구 표시, 광고 제한, 전자거래 금지 같은 각종 규제를 받지 않는다.
액상 전자담배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국회에서는 담배사업법 개정안, 이른바 ‘전자담배 꼼수 방지법’을 통해 담배 정의를 ‘연초의 뿌리나 줄기, 합성 니코틴으로 제조한 것’까지 넓히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기획재정부는 “합성 니코틴을 담배 원료로 인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합성 니코틴의 독성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는데 담배로 인정하면 정부가 유통을 허용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반대했다.
올해 들어서도 기재부의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에서 요청이 들어와 다른 부처에 합성 니코틴 유해성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지만, 이를 분석할 표준화된 분석기법이나 연구자가 부재해 결론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자담배의 위해성 우려는 이미 다방면에서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건강에 덜 해롭다고 보기 어렵다는 법원 판단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6단독 이백규 판사는 지난달 21일 전자담배 사용자 단체인 흡연자인권연대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건강에 덜 해롭다고 보기 어렵다”며 “건강 위험 경고 그림을 넣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건강 위협 숨기는 액상 전자담배 홍보
그러나 여전히 액상 전자담배는 법으로 규정한 담배와 달리 건강 위험 경고 그림이 없는 채 포장돼 판매되고 있다. 10대에 액상형 전자담배를 접하기 시작한 이모씨(21)는 “액상 담배가 맛도 다양하고 나쁜 물질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 가볍게 시작했던 것 같다”며 “지금은 전자담배가 없으면 허전해서 몇 년째 습관적으로 피우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서울 시내 일부 전자담배 매장에서는 RS-니코틴인 ‘의료용 니코틴’을 사용해 “더 건강하게 피울 수 있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2022년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RS-니코틴은 엄연한 니코틴으로 헤로인, 코카인, 알코올만큼 중독성이 강한 물질이며, 금연보조제 같은 금연 효과 또한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학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인 미국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게재된 논문 ‘니코틴 거울상이성질체 분리 및 니코틴 공급원 평가를 위한 분석 방법의 체계적 고찰’(2023)을 살펴봐도 합성 니코틴이 사람에 미치는 영향은 실험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2022년부터 법 개정을 통해 합성 니코틴도 담배에 포함해 똑같이 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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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담배사업법상 담배의 정의가 규제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정의하면 해결될 문제”라며 “니코틴은 어떤 것으로 만들었든 몸에 들어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해 몸에 해를 주는 것은 매한가지”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합성 니코틴 제품 모니터링은 계속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담배 정의에 포함되지 않는 이상 법적으로 제재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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