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성격의 전화 이어져
총선 후보 홍보용 전화도 논란
서울 중구에 사는 직장인 A씨(33)는 최근 쏟아지는 여론조사 전화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무 특성상 외부와 연락할 일이 잦은데, 업무시간에도 수십 통씩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 오는 바람에 중요한 업무 연락을 놓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당 번호를 수신 차단하더라도 뒷번호만 바뀌어 다시 전화가 걸려 와 무용지물이었다. A씨는 "요새 밤낮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를 받고 있다"며 "차단을 했는데도 바뀐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와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보기도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 전화와 선거 문자에 불편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선거철 여론조사 전화와 선거 유세 문자를 발송하는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개인정보 수집 과정에서 허술한 법망을 이용하는 사례도 있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선거법 제57조 및 108조는 정당 및 여론조사 기관이 당내 경선과 선거 여론조사 등을 목적으로 할 경우 유권자의 번호를 이동통신사에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이때 번호는 실물 번호가 아닌 '070'으로 시작되는 가상번호로 제공된다. 여론조사 기관이 유권자 번호를 받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가상번호로 제공돼 실제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는 적다.
한 여론조사 전문 업체 관계자는 "올해 유독 전화가 많이 온다고 유권자 사이에서 불만이 많은 건 알고 있다"며 "그러나 올해부터 여론조사 기관 등록 요건이 강화되면서 선관위 등록 업체 수는 대폭 줄었다. 유권자 번호도 모두 가상 번호로 전달되기에 개인정보가 유출될 우려도 없다"고 설명했다. 수신을 원치 않는 유권자는 이동통신사로 연락해 번호 제공을 거부할 수 있다. SKT는 1547, KT는 080-999-1390, LG유플러스는 080-855-0016으로 연락하면 된다.
선거 유세 문자도 선거철 유권자를 괴롭히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공직선거법상 선거 유세 문자는 20명 초과 인원에 동시에 발송할 경우 같은 유권자에 한해 최대 8번까지, 24시간 발송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수신인을 20명 이하로 쪼개면 횟수 상관없이 무한대로 발송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문자 발송 대행업체에선 수신인을 20명으로 나눠 발송하는 '꼼수 작업'이 횡행한다.
개인정보 수집 과정에서 허술한 법망을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제3자를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할 시 반드시 본인에게 동의받아야 한다. 본인에게 개인정보를 직접 얻더라도 수집과 처리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브로커 등을 통해 개인정보를 사고팔거나 본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는 모두 처벌 대상인 셈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개인정보를 '불법적으로 수집했는지' 입증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동호회, 지인, 브로커 등을 통해 번호를 불법적으로 수집했더라도 행위 주체가 이를 부인하면 사실상 처벌할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에도 개인정보 수집 경로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어 처벌할 방법이 없다.
지금 뜨는 뉴스
최경진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불법 수집을 처벌하려면 '불법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선거 전화를 적극적으로 받을 의지가 있는 유권자들을 모아 '화이트 리스트'를 만들고, 반대로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제도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