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백악관 등 서방 '불공정 선거' 규탄
러·서방 갈등, 우크라전 더 험해질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4년 러시아 대선에서 87%의 압도적 지지율로 5선을 사실상 확정하며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이번 압승으로 우크라이나전 명분을 재확인한 푸틴 대통령이 서방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며 우크라이나전을 장기간 끌고 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미국 백악관과 유럽연합(EU) 등 서방과 우크라이나는 불공정한 선거라며 푸틴 대통령을 일제히 규탄했다.
17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은 러시아 국영 TV의 출구조사 결과를 인용해 푸틴 대통령이 4명의 후보 중 가장 높은 87%의 득표율로 선두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같은 득표율이 확정되면 러시아 대선 역대 최고 득표율이 된다. 종전 최고 기록은 지난 2018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 자신이 기록한 득표율 77%였다. 이번 대선에 '들러리'로 출마한 친(親)푸틴 후보 3명의 지지율은 각각 5% 미만이었다.
러시아 대선은 지난 15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진행됐다. 아직 개표가 진행중이지만 푸틴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된다. 이로써 푸틴 대통령은 2000년, 2004년, 2012년, 2018년에 이어 또 다시 승리하며 2030년까지 또 다시 6년간 집권하게 됐다. 현대판 차르(황제)로 사실상 종신집권의 길을 연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20년 개헌으로 오는 2030년 대선까지 출마할 수 있어 이론상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서 총 투표율은 74%를 기록했다. 지난 2018년 역대 최고 투표율인 67.5%를 넘는 수준이다. 러시아 6개 지역에서는 투표율이 90%를 넘어섰다.
이번 선거 결과는 예견된 일이다. 야당 후보들은 갖가지 이유로 선거 출마가 차단됐고,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지난달 감옥에서 의문사로 숨졌다. 또한 러시아는 공공 부문 직원에게 조기 투표나 온라인 투표를 강요해 선거 조작 논란 역시 제기되고 있다.
서방과 우크라이나는 선거 결과가 나온 후 일제히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 백악관은 러시아 대선에 대해 "분명히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밝혔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반대는 없다. 자유도 없고, 선택의 여지도 없다"고 비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엑스(X·옛 트위터)에 "러시아의 독재자가 또 다른 선거를 거짓으로 꾸미고 있다"며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 (득표율) 숫자를 이해하고 있다. 단순히 권력에 중독돼 영원히 통치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푸틴 대통령을 규탄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전이 2년 넘게 장기화되는 상황에서도 대선에서 압승하면서 민심을 통해 전쟁 명분을 재확인하려 들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서방과의 대립을 강화하며 전쟁을 장기간 끌고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실패하고, 미국 의회가 우크라이나 지원안 승인을 미루면서 푸틴 대통령에게는 승기를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모스크바 정치분석센터의 파벨 다날린 수석은 "이번 선거 결과는 푸틴에게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어려운 시나리오조차 실행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제공한다"며 "역사적으로 높은 (지지율) 결과는 국민 대다수가 푸틴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미국 CNN 방송은 "선거 이후 러시아는 점점 커지는 우위로 우크라이나 압박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뉴욕=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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