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1kg 생산때 온실가스 4kg 이하 발생
채굴부터 출하까지 '웰투포트' 개념 적용
탄소 부산물 팔면 추가 감축 인정 검토
인증받아야 청정수소발전입찰 참여 가능
올해 처음 시행되는 청정수소 인증제에 대한 에너지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달 말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렸던 ‘청정수소 인증제’ 설명회에도 400명이 넘는 방청객이 몰렸다.
수소는 그동안 생산 방식에 따라 그린·그레이·블루 수소 등으로 불렸다. 청정수소 인증제는 이와 달리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생산이나 수입 과정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 ‘청정수소’로 인증하고 정부가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한다.
청정수소 인증제에 대한 법·제도도 완비됐다. 지난해 11월 근거를 담은 수소법 시행령이 개정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열린 제6차 수소경제위원회 회의에선 청정수소 인증제 도입방안을 의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초 청정수소 인증제도 운영에 관한 고시를 관보에 게재하면서 마지막 관문을 넘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청정수소 인증 운영기관으로 에너지경제연구원, 청정수소 인증시험평가기관으로 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과 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을 선정하면서 추진 체계도 마련했다.
청정수소 인증제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올해 상반기에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Clean Hydrogen Production Standard)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CHPS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 사업자는 전력 일부를 수소 발전으로 생산해야 한다. 석유화학·가스·발전 사업자들이 CHPS 사업을 준비 중이다. CHPS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우선 청정수소 인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예비 발전사업자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달 열린 청정수소 인증제 설명회에도 CHPS 예비 사업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청정수소, 우물에서 정문까지가 기준?
수소는 연소할 때 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한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수소 자체는 청정 원료이지만 수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탄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얻은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수전해)해서 만드는 그린 수소는 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문제는 개질 수소다. 우리나라처럼 재생에너지가 풍부하지 않은 국가들은 주로 천연가스를 개질(reforming)해 수소를 만든다.
주로 천연가스의 주성분인 메탄(CH4)을 고온의 수증기와 반응시켜 수소(H2)를 떼어내는 증기메탄개질(SMR) 기술이 많이 쓰인다.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일산화탄소(CO)나 이산화탄소(CO2)가 발생한다. 고온의 수증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된다. 보통 1㎏의 수소를 생산할 때 10㎏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질 수소를 일반적으로 그레이 수소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때 수소 생산 공정에서 탄소 포집·저장·활용(CCUS) 기술을 적용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를 블루 수소라 불렀다.
청정수소 인증제도는 이처럼 기술적인 조치 등을 통해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낮춘 경우 청정수소로 인정해 수소 사회를 앞당기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정부는 다양한 논의를 거쳐 국제적인 흐름을 반영해 수소 1㎏을 생산할 때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이 4㎏ 이하인 경우를 청정수소로 인증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그린 수소나 블루 수소, 바이오 수소, 원자력 수소 등이 청정수소의 범주에 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그럼 온실가스 배출량 4㎏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기준으로 측정할 것이냐다. 배출량 산정 범위는 크게 웰투게이트(Well-to-Gate), 웰투포트(Well-to-Port), 웰투휠(Well-to-Wheel)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웰투게이트를 우선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개질 수소를 기준으로 할 때 웰투게이트는 천연가스 채굴(Well)부터 수소를 생산해서 출하(Gate)하는 단계까지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내에서 천연가스를 개질하기도 하지만 중동 등 해외에서 생산한 수소를 수입하는 비중도 상당하다. 해외에서 수소를 들여올 때는 수소를 액화하거나 암모니아로 합성한 후 선박을 이용하게 된다. 액화수소 전환, 암모니아 합성, 선박 운송 등에도 적지 않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이 부분까지를 포함한 개념이 웰투포트다.
인증제 운영 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의 이혜진 부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 등 추이를 고려해 우선 선박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한시적으로 제외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금 당장 웰투포트 개념까지 확장하면 청정수소로 인증받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웰투휠은 국내 수소 저장소에서 자동차나 발전소 등 수요처까지 운반하는 데 배출하는 온실가스까지도 포함하는 가장 광범위한 개념이다. 장기적으로는 청정수소 개념이 웰투휠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 밖에 정부는 청정수소 생산에 사용되는 폐열을 활용할 경우에도 타당성 검토 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수소 수송을 위한 가압 공정이나 설비 제조 과정에서 나오는 배출량 등 수소 생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활동도 배출량 산정에서 빼준다.
수소 사업자들은 해외에서 생산한 수소를 암모니아로 전환해 수입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암모니아의 비등점은 -33도로 수소(-253도)에 비해 낮아 액화하기 쉽다. 암모니아는 활용 범위도 넓다. 수소로 전환해 원료로 사용하거나 석탄과 섞어서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에 쓰이기도 한다. 비료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수소(H2)와 질소(N2)를 화학 반응시키면 비교적 쉽게 암모니아(NH3)를 생산할 수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청정수소를 인증할 때 수입항에서 측정한 기준으로 암모니아 6.45㎏을 수소 1㎏으로 환산해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저위 발열량(연소 가스 중 수증기의 발열량을 뺀 것)을 기준으로 수소가 1㎏당 120메가줄(MJ)의 열에너지를 낼 수 있는데 이는 암모니아(18.6MJ/㎏)의 6.45배에 해당한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포집한 탄소 팔아도 추가 감축량 인정
수전해 방식으로 청정수소를 생산할 경우에는 시간적·공간적 상관성 개념이 쟁점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력원과의 시간적 상관성은 1개월 단위로, 공간적 상관성은 동일 그리드(grid·전력망)내로 한정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3월에 A풍력단지에서 100메가와트시(㎿h)의 전력을 생산했는데 같은 달 동일 수소 생산 설비에서 120㎿h의 전력을 사용했다면 재생에너지로 사용한 양은 100㎿h만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수소 생산업자는 직접전력구매(PPA)나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를 이용한 경우도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수소를 생산한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포집한 탄소 부산물의 처리도 쟁점이다. 포집한 탄소를 저장하거나 활용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청정수소의 의미가 퇴색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포집한 탄소를 외부에 판매할 경우 구매 사업장에서 기존 연료나 원료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면 이를 배출량 감축 효과로 인정할 계획이다. 반대로 탄소 포함 부산물이 최종 사용 및 폐기되는 과정에서 탄소가 발생한다면 이를 배출량에 합산한다. 포집한 탄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추가 탄소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자는 취지다.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방법의 하나로 바이오 수소도 거론된다. 가축 분뇨, 하수 슬러지, 음식 쓰레기, 폐목재 등이 미생물에 의해 분해되면 메탄과 이산화탄소, 황화수소, 암모니아 등이 발생한다. 여기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순수 메탄만을 추출하면 바이오 메탄이 된다. 바이오 메탄을 한 번 더 개질한 게 바이오 수소다.
정부는 수소 생산 외에 다른 활용 방안이 없는 폐기물을 활용한 경우에만 바이오 수소로 인정할 계획이다. 퇴비, 액비 등 다른 방식으로 활용 가능한 경우에는 바이오 수소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청정수소로 인증받기 위해서는 설비 심사→인증서 발급 신청→현장 심사의 과정을 거친다. 설비 심사는 사업자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현장 설비 심사를 통해 청정수소 설비 확인서를 발급하는 과정이다. 이후 사업자가 물량 증빙 서류를 첨부해 인증서 발급을 신청하면 6개월간의 현장 데이터(운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현장 심사 후 인증서를 발급하게 된다.
청정수소 인증에 대한 최종 결정은 인증심의위원회가 맡는다. 인증심의위원회 산하에는 실무협의회를 두기로 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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