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게시 의무, 1인 병원 확대
최저 요금만 명시 등 '꼼수' 태반
"3월부터 지자체 단속 실시"
19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 엑스선 촬영 비용을 물어보니 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항목별 진료비를 보고 싶다고 하자, 간호사가 접수창구의 업무용 서랍에서 A4용지를 꺼내 왔다. 살펴보니 진료 비용을 기재해야 하는 칸은 공란이었고, 비고란엔 '동물 종, 품종, 체중 및 촬영 부위 등에 따라 비용이 상이할 수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또 다른 검사인 전혈구 검사비 및 판독료를 살펴보니, 최저 요금(기본요금)은 13만원으로 명시돼 있었으나 최고 요금은 역시 공란이었다. 비고란엔 '외부 위탁 검사 시 비용이 별도로 청구될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해당 병원 의료진은 "동물별로 조건이나 상황이 너무 제각각이라 진료비를 딱 정해놓고 운영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최대한 기본요금에 맞춰 진료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불가피하게 추가 요금이 붙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시행 1년 지났는데…서울 동물병원 곳곳에서 '위반'
개정 수의사법에 따르면 전국 동물병원은 올해 1월5일부터 진찰료, 입원비, 백신 접종비, 전혈구 검사비 등 11개 항목에 대한 진료비를 병원 내 접수창구나 대기 공간 등 소비자의 눈에 잘 띄는 곳에 게시해야 한다. 또 중대 진료가 필요한 경우엔 예상되는 청구 비용을 사전에 구두로 안내해야 한다.
이 제도는 지난해 1월5일 수의사 2인 이상 동물병원을 대상으로 적용된 데 이어 1년 뒤인 올해 1인 원장 동물병원까지 포함돼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서울 일대 동물병원 10곳을 방문한 결과, 절반에 달하는 5곳이 진료비를 제대로 명시하지 않거나 혹은 명시했더라도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부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가장 흔한 사례는 최저 요금은 명시하되, 최고 요금을 공란으로 둬 사실상 소비자에게 정확한 진료비를 고지하지 않은 경우였다. 일부 병원에선 항목별 진료비를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부착하거나 손님이 볼 수 없는 업무용 서랍에 보관한 경우도 있었다. 1인 원장이 운영하는 한 동물병원에선 아예 "검사별 정해진 진료비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최저 요금을 명시했더라도 최고 요금을 명시하지 않았다면 제도를 어긴 것과 마찬가지"라며 "3월부터 지자체 차원에서 단속을 시행해 위반 시 1차 시정명령, 2차부터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식으로 점검에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진료비 '요금 폭탄'도 여전
동물병원 진료비 의무 게시는 1999년 표준 수가제가 폐지된 이후 '부르는 게 값'이 돼버린 동물병원 진료비를 투명화하기 위해 시행됐다. 그간 깜깜이에 가까웠던 진료비를 소비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하고 중대 진료 이전엔 예상 청구 비용을 사전에 고지함으로써 과잉 진료 및 청구를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진료비 게시 외에도 예상 청구 비용을 사전에 고지하는 행위 역시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 안양시에 거주하는 윤모씨(30)는 최근 췌장염으로 반려견을 인근 동물병원에 3일 입원시켰다가 146만원에 달하는 진료비를 청구받았다. 내역을 확인해보니 진찰료, 입원비, 엑스선 촬영, 수액 처치비, 주사료에 더해 매일 15만원에 달하는 혈액 검사료가 3회나 포함돼 있었다.
윤씨는 "나머지 검사들은 췌장염에 필수적인 처방이니 그러려니 해도 한 번에 15만원에 달하는 혈액검사를 꼭 매일 해야 했는지 의문"이라며 "사전에 설명이라도 들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말없이 처치한 뒤 나중에 영수증을 받으니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농림부의 전국 동물병원 진료비 조사 결과를 보면, 같은 항목이더라도 병원에 따라 많게는 수십 배까지 차이 난다. 가장 차이가 큰 항목은 재진 진찰료로 최저 요금은 2000원, 최고 요금은 10만원으로 병원에 따라 50배가량 차이 났다. 이외에도 상담료 45배, 입원비 30배, 전혈구 검사비 30배 등으로 최저 및 최고 요금 간 진료비가 천차만별이었다.
정부는 이 같은 반려인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올해까지 반려동물 진료 항목 100개에 대한 표준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진료 항목이 표준화되면 사전에 고지한 대로 진료가 이뤄지므로 과잉 진료에 대한 우려가 대폭 해소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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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 관계자는 "현재 반려인들이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해 느끼는 불만을 잘 알고 있다"며 "반려동물 의료 시스템은 사람처럼 공적인 영역이 아니다 보니 표준 수가제를 도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진료비 게재, 사전 고시 등이 현장에서 잘 지켜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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