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제본가 송해인씨 작품… "15년째 활동, 영광"
영국 윈저성 메리 왕비의 '인형 집'(Queen Mary's Dolls' House) 100주년 프로젝트에 한국인이 만든 미니어처 책이 뽑혔다.
4일 연합뉴스는 런던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예술 제본가 송해인씨가 이 인형 집의 서재를 채운 현대 작품 21권 중 1권을 맡았다고 보도했다. 유럽식 전통 제본을 뜻하는 예술 제본은 직접 손으로 제본하는 정교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송씨는 튀르키예 출신 영국 여성 소설가 엘리프 샤팍의 작품을 인형 집에 맞게 우표 정도의 크기(높이 4.5㎝)로 만들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추진한 커밀라 왕비의 메시지를 포함해 커밀라 왕비의 아들 톰 파커 볼스의 '왕비를 위한 요리법',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의 대관식', '영국의 아프리카 기원' 등과 같은 책도 영국 예술 제본가들의 손을 거쳐 미니어처로 탄생했다.
이번에 제작된 책들은 윈저성에 전시된 뒤 왕실 도서관에 소장될 예정이다. 인형 집 서재에 있는 책은 약 600권에 달한다. 이 중 상당수는 아서 코난 도일 등이 손으로 쓴 것이다.
인형집은 실제의 12분의 1 크기로 지은 저택으로 서재와 식당, 침실 등이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책을 꺼내 펼쳐 보면 글씨가 인쇄되어 읽을 수 있다. 1921년 당시 조지 5세 영국 국왕의 사촌 마리 루이즈 공주가 메리 왕비를 위해 계획해 영국 최고 건축가 에드윈 루티엔스가 총괄 디자인을 맡아 1924년 완성됐다. 2022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메리 왕비의 손녀다.
인형 집에는 와인 저장고, 진짜 보석이 박힌 왕관, 그랜드 피아노, 진공청소기, 재봉틀뿐 아니라 전기, 엘리베이터, 수도 등이 정밀하게 구현돼 1920년대 타임캡슐로도 불린다. 이 때문인지 인형 집은 1925년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일반에 공개된 이후 160만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는 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영국에서 활동하는 예술 제본가 중에 한국인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 유일하게 뽑혀서 영광"이라면서 "지난달 30일 윈저성 리셉션에 한복을 입고 커밀라 왕비를 만났는데 예술 제본 일을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서울대 산업디자인과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한 뒤 2005년 영국으로 와서 센트럴세인트마틴스예술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예술제본을 비롯해 직접 아티스트 북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수년 전엔 영국 예술제본협회에서 약 30명뿐인 펠로로 선정됐다.
영국도서관,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V&A), 미국 스탠퍼드대 등도 송씨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옥스퍼드대 보들리안 도서관에서 4년에 한 번 수여하는 예술제본 은상도 받았다.
김은하 기자 galaxy65657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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