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인력난 고심한 남이섬, 직장 어린이집 건립
직원들이 나서서 출산· 육아 장려 선순환
저출산·지방인구 소멸로…기업도 수도권 쏠림
안개가 낀 북한강변, 검은 차량이 얼어있는 도로를 조심히 달렸다. 차량이 오르막길을 지나 경기 가평군에 있는 남이섬 어린이집 앞에서 멈춰 섰다. 차량에서는 부부가 졸려 칭얼거리는 남자아이와 함께 내렸다. 부부는 문을 열고 어린이집 교사에게 아이의 손을 넘겼지만 아이는 돌아와 엄마 품에 안겼다. "로하야 오늘도 재밌게 놀아야지?" 로하 엄마 장주영씨(39·여)는 웃으며 이로하군(7)의 머리와 뺨을 쓰다듬었다. 아빠 이청원씨(42·남)도 미소를 띤 채 로하에게 손을 흔들었다. 로하는 조금 더 엄마 품에 안겨있다가 이내 교사의 손을 잡았다. 로하는 교사와 눈을 마주치자 배시시 웃으며 2층 놀이공간으로 올라갔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부부는 바로 옆 남이섬 선착장으로 가 오전 8시30분 배에 올라탔다. ‘주식회사 남이섬’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장인 부부의 출근 모습이다.
이 부부의 일과는 오전 6시30분에 눈을 뜨며 시작된다. 아침식사를 간단히 준비하면서 초등학생인 첫째 딸과 로하를 깨운다. 로하는 잠투정이 있지만 곧장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나면 로하는 차량으로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집이 직장, 어린이집과 차로 5분 거리밖에 되지 않아 여기서 시간을 많이 번다. 부부는 아침에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긴다. 3년 전, 직장 어린이집이 있는 가평군으로 이사를 왔기에 가능한 하루의 시작이다. 장씨는 "다른 집은 아침마다 아이 밥 먹이고 어린이집 보내는 것 때문에 전쟁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비교적 여유로운 편"이라며 "가평군으로 이사 오면서 시간도 벌고 가족의 행복도 얻었다"고 말했다.
주말에도 봐주는 어린이집…가평 이사 오는 젊은 부부
2021년부터 운영된 남이섬 어린이집에는 20명의 어린이가 교사들의 보육을 받고 있다. 아이들은 건물 내부에 놀이터가 갖춰진 연면적 770.14㎡의 2층 건물에서 뛰어논다. 정원 60명을 목표로 처음부터 크게 지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 덕에 성인 남성 10명은 누울 수 있는 공간에서 아이 3~4명이 뛰어놀고 있다. 어린이집에는 남이섬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자녀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해부터는 가평군 주민이면 누구나 남이섬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 수 있다. 어린이 20명 가운데 6명은 남이섬과 관계없는 가평군 주민의 자녀다. 탁재윤 남이섬 어린이집 원장은 "가평군에서 펜션, 식당 등을 운영하는 부모들은 주말에 아이를 돌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며 "남이섬 어린이집은 주말에도 운영하고 있어 시간이 없는 부모들이 아이를 맡기러 온다"고 말했다.
남이섬은 직장 어린이집 건립 의무 대상 사업장이 아니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상시 여성 근로자가 300명 이상이거나 근로자 500명 이상 고용한 사업장은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하거나 어린이집과 위탁 계약을 맺어야 한다. 현재 남이섬의 총직원 수는 149명이고 여성 직원은 42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젊은 직원 채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린이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일단 가평군에 사람이 없다. 가평군은 젊은 인구는 급속도로 줄고, 노인 인구는 급격히 늘어나면서 인구감소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게다가 관광지인 남이섬의 직원은 주말 없이 일해야 하기에 특별한 복지 없이는 일과 생활 균형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었다. 어린이집 건립에 국가보조금 20억원과 회삿돈 20억원 등 총 40억원을 투자하고 매년 2억원의 비용을 감당하는 이유다.
성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20, 30, 40대 직원 수는 79명이었지만 지난해 96명으로 대폭 늘었다. 20, 30, 40대 직원 비중도 57%에서 65%로 증가했다. 민경혁 남이섬 대표는 "관광업을 움직이는 건 사람인데 가평군은 대도시와 비교해 직원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남이섬은 큰 기업도 아니라서 급여를 획기적으로 올릴 수 없는 노릇"이라며 "직원들이 받을 수 있는 장기적 혜택을 생각하다가 직장 어린이집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직원들이 얻게 되는 이익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육아하는 남이섬 직원들은 시간을 벌어다 주는 어린이집의 매력에 이 직장을 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장씨는 10여년 전 첫 직장이던 남이섬에서 벗어나 다른 호텔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가질 준비를 하면서 여성 선배들의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 회사를 그만두거나 아이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결국 장씨는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남이섬으로 복직했다. 시간을 벌기 위해 남이섬 근처로 이사도 왔다. 남이섬은 근무한 경험이 있는 직원이 오는 게 좋다며 장씨의 복직과 이사를 오히려 반겼다. 장씨는 "아이를 낳더라도 커리어를 걱정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했다"며 "부모 입장에서 육아에 필요한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낮아진 출산율과 소멸하는 지역인구…기업마저 수도권으로
저출산 현상과 함께 지방 인구가 소멸하고 있다. 2021년 10월 행정안전부는 고시를 통해 전국 229곳 시군구 가운데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연평균 인구증감률과 청년 순이동률, 고령화 비율, 조출생률 등 지표를 종합해 선정한 지역이다. 앞서 언급한 가평군뿐만 아니라 부산시 동구·서구·영도구, 대구시 남구·서구 등 광역시마저도 포함됐다. 이 지역들의 2022년 기준 출생아 수는 경북 안동시와 영천시를 제외하고는 500명을 넘어서는 곳이 없다. 2022년 한 해 동안 경북 울릉군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20명에 불과하다.
기업들도 인구가 많은 수도권에 쏠릴 수밖에 없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기업 772만3867개 가운데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만 402만4987개(52.11%)가 몰려 있다. 수도권의 종사자 수도 1360만809명으로 전체 2286만5491명 중 약 59.5%를 차지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젊은 인재를 찾기 위해 기업들은 당연히 수도권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며 "나머지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도권으로 향하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말했다.
가시밭길이었던 남이섬 어린이집 건립과 운영…”육아 중심 문화가 우선”
"회사 의지와 별개로 직장 어린이집 건립까지 쉽지 않았습니다." 직장 어린이집 설치를 주도한 이청원 남이섬 경영기획부문장은 어린이집 설립을 추진하는 동안 여러 곳에서 나오는 반발에 직면했다. 지역 내 민간 어린이집의 반발이 가장 곤란했다. 안 그래도 가평군은 아이가 없는 곳인데 자금이 비교적 충분한 기업의 직장 어린이집이 생기면 원아를 뺏긴다는 이유에서다. 가평군도 민간 어린이집의 반발을 고려해 처음에는 남이섬 어린이집 건립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사내 반발에도 부딪혔다. 아이가 없는 20대 직원들은 체감하기 어려운 복지 혜택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이씨는 "소극적인 지방자치단체나 일부 직원의 반발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결국 직장 어린이집이 가지고 올 선순환에 모두가 동의했다. 20대 때 불만을 보이던 직원들도 결혼하고 출산을 준비하면서 직장 어린이집이 있다는 것에 안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인 입국이 제한되면서 국내 관광업이 사실상 전멸했다. 남이섬도 피하지 못했다. 2019년 322억원이던 매출이 2020년 134억원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어린이집 건립과 운영은 멈추지 않았다. 민 대표는 웃으며 "사실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모르고 계속 추진했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 즉 사람에 대한 투자는 1년 단위로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며 "직장 어린이집은 장기적 관점에서 하게 된 사람에 대한 투자였다. 비용을 줄일 수는 있어도 끊어지면 안 되는 복지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인사팀에 있는 안애림씨(43·여)는 육아를 우선 고려해주는 사내 문화가 아니었다면 어린이집 건립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를 위해 육아휴직, 반차, 유연근무제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가 먼저 자리 잡혔기에 어린이집 건립도 계속 추진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안씨는 "아이가 아파서 반차를 쓴다고 하면 모두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일 생각 말고 아이에게 다녀오라고 한다. 가정의 소중함을 아는 직장"이라며 "사실 직장 어린이집이 모든 육아 문제의 해답이 되지 못한다. 직장에서의 사소한 배려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직원들 간 육아 품앗이’가 남이섬의 육아 우선 문화를 보여주는 예다. 주말에 초등학생 자녀를 급하게 맡길 곳이 없으면 다른 직원들에게 맡긴다. 자녀끼리도 자주 만난 덕에 친해서 가능한 일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보살핀다. 도자기를 만드는 공예원에서 근무하는 한재성씨(42·남)를 비롯해 7개 가정은 육아 품앗이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모여서 식사를 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씨는 "아이들이 공예 작업을 하는 나를 보면 ‘삼촌’이라며 알은체를 한다"며 "아이들이 친하게 지내고 서로의 부모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아이를 우선하는 사내 문화가 조성되니 직원들이 나서서 출산과 육아를 장려한다. 현재 안씨는 사내 부부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적극 권유하는 '출산 전도사' 역할을 맡고 있다. 아이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는 직원이 있으면 찾아가 아이가 가져올 행복을 설명한다. 안씨는 "당연히 아이를 낳으면 고되다. 출산 전에 할 수 있었던 쇼핑도 마음껏 못 하고 우는 아이를 달래다 보면 수면 부족에 시달린다"면서도 "아이가 주는 행복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일에 매진한다고 포기해서는 안 될 행복"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다른 사람도 그 행복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육아를 소중히 하는 사내 문화가 가져오는 선순환을 강조했다. 안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회사와 동료들에게 받은 게 많다"며 "앞으로 기회 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고마움을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K인구전략-양성평등이 답이다'
김필수 경제금융에디터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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