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저축은행 사태도 부동산 PF에서 촉발
반복되는 PF부실…고위험 '브릿지론-본PF' 이중 구조
정부, 부동산 PF 근본적 개혁…시행사 PF 자기자본 비율 대폭 상향 검토
금융권엔 추가 충당금 압박…신속한 PF 사업장 구조조정 유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가운데 5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태영건설의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공사현장이 멈춰 서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2011년 저축은행 사태의 중심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있었다. 솔로몬저축은행, 부산저축은행, 토마토저축은행, 프라임저축은행 등은 고수익을 노리고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건설사와 시행사에 무차별 대출을 해줬고,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자 빌려준 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간판을 내렸다. 2015년까지 이어진 여파로 문을 닫은 저축은행만 31곳에 달했다.
정부는 저축은행 부실채권 매입에 재정을 투입하는 한편 예금보험공사를 파산관재인으로 해 파산 절차에 속도를 냈다. 당시 예보를 통해 지원한 자금만 27조1717억원에 달했다. 그러면서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저축은행 표준대출규정'을 도입해 자기자본 20% 이상인 PF 사업장에만 대출을 허용하는 등 대폭 강화된 조치를 시행했다.
2023년 12월 26일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신청도 부동산 PF에서 시작했다. 부동산 호황기 직간접 대출보증을 통해 PF사업장을 공격적으로 늘려가던 태영건설이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하락세를 이기지 못하고 대출 만기에 이자조차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채권단에 구조를 요청하는 상황이 놓인 것. 12년 정도 저축은행 사태를 겪으면서 강화했던 대출 규정 강화 조치도 소용이 없었던 셈이다.
정부는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을 계기로 부동산 PF 시장의 관행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방침이다. 과거 정부가 저축은행의 무차별 PF 대출로 인해 발생한 뱅크런(Bank Run) 사태에 초점을 맞추고 금융소비자 구제에 힘을 쏟았다면, 금융환경 변화에 따라 불거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다.
고위험 '브리지론-본PF' 이중 구조 근본적 개혁…자기자본 최소 20%로
우리나라 부동산 PF 시장은 '브리지론-본PF' 라는 이중 구조가 특징이다. 브리지론은 시행사가 토지를 매입하고 잔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본PF는 브리지론을 상환하고 건설비용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구성된다. 브리지론은 본PF에 비해 초기 사업성 평가를 기초로 발생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훨씬 커 시중은행보다 2금융권인 증권, 캐피털, 상호금융 등이 고금리 단기 대출 성격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부동산 개발사업을 일으키는 시행사의 자기책임이 지나치게 적다는 점을 구조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통상 시행사들은 전체 사업 자금의 5~10%만 자기자본으로 조달하고, 나머지는 레버리지(leverage)를 활용한다. 적은 자금으로 여러 개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을 일으켜 높은 분양가로 집을 산 입주자들이 낸 돈으로 PF 대출을 갚고, 고수익을 거두는 구조다. 위험을 과도하게 추구하고, 경우에 따라 모럴 해저드(도적적 해이)가 쉽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재 부동산 PF 시장을 두고 "분양가격이 하락하면 줄줄이 망하는 구조다. 현행 구조에서는 위기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배경이다.
이에 기재부를 중심으로 관계부처는 시행사들의 자기자본 투입 비율을 20%로 높이는 쪽으로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내용을 골자로 '부동산 PF 정상화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부동산 개발주체가 상당 부분의 자기자본을 직접 출자해 사업 인허가까지 마무리한 이후에야 본PF를 일으키는 게 통상적이다. 미국 역시 토지매입 비용 등 개발 초기 자금은 부동산 개발 주체가 충당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발언 수위를 더욱 높이기도 했다. 그는 24일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업계 간담회에서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20%가 아니라 100%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책임이 될 수 있는 상태에서 부동산 개발 시행을 하지 않는 것은 앞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권에 추가 충당금 압박…질서 있는 PF 사업장 구조조정 유도
신임 최상목 경제부총리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박춘섭 경제수석이 참석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정부는 또한 금융권에 부동산 PF 관련 충당금을 보다 적극적으로 쌓도록 했다. 태영건설 워크아웃 여파로 PF 사업장 재구조화가 진행되는 만큼 미리 손실 흡수능력을 키우기 위한 조치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금융권에 여력이 있는 만큼 최대한 충당금을 적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재원을 배당과 성과급으로 사용하는 금융사에는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적극적인 충당금 쌓기로 부동산 PF 시장 구조조정이 민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태영건설만 해도 60개 PF 사업장에 대한 대대적인 재구조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충당금을 미리 쌓은 금융사들을 중심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동산 PF 사업장을 신속하게 처리해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PF 사업장 내 이해관계를 민간에서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질서 있는 연착륙을 지속적으로 유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조정이 활발해지면 경·공매 시장의 역할도 중요해질 전망이다. 경·공매를 통한 토지 가격 하락을 유도해야 '뉴 머니'가 투입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사업성이 낮은 PF 자산을 매입해 재구조화할 목적으로 지난 10월 조성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펀드는 그간 매입 실적이 단 한 건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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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이번 부동산 PF 구조조정을 계기로 관련 규정과 프로세스를 종합적으로 재정리할 계획"이라며 "위기의 악순환을 멈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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