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가격 3년 전보다 118%↑ 카네이션·백합 등 줄줄이 올라
가격 높은 ‘하향식 경매’ 방식 대형 중도매인 경매권 가져
물량 대부분 싹쓸이 한 후 소매상인에 비싸게 되팔아
경기 과천시에 거주하는 직장인 A씨(46)는 얼마 전 초등학생 자녀의 졸업식을 앞두고 동네 꽃집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장미와 카네이션 각각 3송이와 안개꽃 등을 골라 적당히 한 다발을 만들었는데, 6만7000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A씨는 "경조사를 제외하곤 평소 꽃을 살 일이 없다 보니 시세를 몰랐는데 생각보다 꽃값이 너무 올라서 놀랐다"며 "적당히 비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구성했는데도 7만원 가까이 나오니 앞으로 꽃 구매하기가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졸업식 등으로 1월 전국 꽃집이 대목을 맞았지만, 치솟은 꽃값에 소비자와 상인 모두 울상을 짓고 있다. 소비자는 꽃값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며 상인들이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높인다. 반대로 상인들은 국내 화훼시장의 유통 구조와 이상 기후, 출하량 감소 등으로 도매가격이 너무 올라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1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화훼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양재 화훼공판장에서 거래된 장미(화이트뷰티) 한 속의 평균 낙찰 금액은 1만2900원으로, 3년 전인 2021년(5900원)보다 118% 상승했다.
같은 기간 꽃다발에 주로 사용되는 또 다른 품종인 카네이션(혼합·대륜)도 6100원에서 1만1700원으로 92% 올랐다. 이밖에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백합(389.1%), 아이리스(105.1%), 거베라(60.9%) 등도 가격이 대폭 올라 모든 품종이 상승세를 그렸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졸업식이 몰리는 12월과 1월은 매년 수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꽃값이 폭등하는 시기"라며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대면 졸업식이 재개되면서 예년보다 수요가 증가한 점도 영향을 미쳤는데, 몇개월 지나면 꽃값도 다시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동네 꽃집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은 '바가지 논란'이 속상하다고 하소연한다. 매년 대목 때마다 널뛰는 꽃값으로 인해 최종 소비자에게 꽃을 판매해야 하는 상인도 난감하다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윤주희씨(36)는 "경매가부터 가격이 너무 올라 주변 상인들도 모두 '울며 겨자 먹기'로 구매하고 있다"며 "속사정을 모르는 소비자들이 바가지를 씌운다고 나가버리면 하루 장사를 떠나 종일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꽃집 상인들은 수요·공급의 영향뿐 아니라 오랜 시간 유지된 국내 화훼 유통구조에 가격 상승의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전국 꽃 가격은 양재동 꽃시장, 부산 사상구 엄궁동 등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운영하는 '법정 도매시장' 6곳에서 진행되는 경매를 통해 결정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높은 가격에서 시작해 점차 가격이 낮아지는 '하향식 경매'가 이뤄지는 곳으로, 상향식 경매보다 진행이 빠르지만 입찰 가격이 훨씬 높게 형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 과정에서 자본력이 상당한 중도매인과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가 경매권 대부분을 쥐게 된다는 게 소상공인들의 주장이다. 자본력을 갖춘 중도매인과 프랜차이즈 업체가 높은 경매가를 제시해 물량 대부분을 구입한 뒤 이를 소매상인에게 더 높은 가격에 되팔고 있는 탓에 소비자가가 점점 높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쿠팡, 컬리, 오늘의꽃 등 대형 e커머스 업체까지 경매 경쟁에 뛰어들면서 상황은 더 악화했다. 소상공인은 이전보다 3~4배가량 비싼 가격을 주고 도매상에게 꽃을 구입하거나, 혹은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남은 물량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한국플로리스트연합 관계자는 "현재 꽃값이 급등한 원인은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경매권을 구매할 수 있는 현 국내 화훼 유통 구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본다"며 "일본 등 해외 국가처럼 우리나라도 화훼 도매시장의 경매권 관리가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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