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에 입양돼 학교도 못 다니고 노동
법원 "착취당한 정황 있지만 계획적 살인"
고아였던 자신을 입양한 양아버지로부터 '머리 검은 짐승'이라는 말을 듣고 격분해 살해한 50대가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았다.
15일 광주고법 형사1부(박혜선 고법판사)는 살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8년을 선고받은 A씨(59)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판결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A씨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11살이 되던 해 양아버지 B씨에게 입양됐다. A씨는 다른 고아들과 함께 입양돼 전남 여수시의 섬마을에 새 보금자리를 얻게 됐다. A씨 등 입양아들은 부족한 일손을 보태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소를 키우고 밭을 매거나 뱃일을 하면서 B씨 집에서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도 일꾼처럼 여러 일을 하는 A씨를 '머슴'이라고 불렀다. A씨는 학교도 다닐 수 없었고 주민등록조차 성인이 될 무렵에야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과 달리 학교에 다니는 B씨의 친자식들을 보면서 양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B씨에게 자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17살이 되던 해 A씨는 B씨가 선장으로 있던 배에서 선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26살에 결혼해 독립한 후에도 계속 양아버지 일을 도왔다. 그러던 가운데 2021년 A씨는 배에서 일하다가 어망 기계에 팔이 빨려 들어가는 사고를 당해 오른팔이 절단됐다. 이로 인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까지 생기면서 그의 마음속에선 어린 시절부터 쌓인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졌다.
A씨는 독립 후 자수성가해 7억원 상당의 선박을 보유하는 등 경제생활은 나아졌지만,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였다. 그는 지난해 2월 술을 마신 후 흉기를 지닌 채 양아버지를 찾아갔다. A씨는 술기운을 빌려 "아버지가 나한테 뭘 해줬냐"며 "20년 전에 배도 주고, 집과 땅도 주기로 해놓고 왜 안 주느냐"고 따졌다.
A씨의 술주정에 B씨가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라고 답하자 격분한 A씨는 흉기를 휘둘러 양아버지를 살해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평소에도 '고아'라고 말해 화가 났는데, 아버지한테 '짐승'이라는 말을 듣자 참을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또 A씨는 팔 절단 사고 이후 정신과 약물 치료 중이었다며 심신미약도 주장했지만, 1·2심 재판부 모두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범행 당시 A씨가 술에 취해 있긴 했으나 B씨와 약 30분간 정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양아버지의 학대나 착취 의심 정황이 있는 등 참작할 점이 있지만, 계획적 살인죄에 중형을 선고한 원심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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