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에몽 캐릭터를 이용해 중국에서 제품을 판매할 권한을 가진 회사에서 도라에몽 미니블록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한 업자의 저작권법 위반 혐의 유죄가 확정됐다.
도라에몽 캐릭터에 대한 국내 상품화권자나 제품 판매권자가 따로 있는 상황에서 저작권자의 명시적인 허락이 없는 한 해외에서의 제품 판매를 허락받은 회사에서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저작권법 위반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모씨에게 벌금 18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양씨는 2015∼2016년 도라에몽, 원피스, 짱구 등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과 유사한 생김새의 미니블록 제품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국내에서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 도라에몽 캐릭터의 경우 일본 저작권자가 중국의 A사에 2015년~2017년 중국 내 상품화권을 부여했고, A사는 다시 중국의 B사에 2015년 7월부터 2016년 6월 30일까지 도라에몽 캐릭터를 이용한 제품의 대만, 홍콩, 마카오를 제외한 중국 대륙 지역 내 판매권을 위임했다.
양씨는 중국 내 판매권을 부여받은 B사로부터 약 960개의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납품받아 국내에서 판매했다.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한국 내 상품화 사업권은 국내의 C사가 소유하고 있다.
1심은 문제가 된 여러 캐릭터 중 일부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 혐의 유죄를 인정, 양씨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나머지 캐릭터에 대한 저작권법 위반 혐의와 캐릭터 전부에 대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양씨가 블록에 사용한 각 표장들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주지성을 획득했다거나, 일본의 각 저작권자나 등록상표권자의 캐릭터 제품 혹은 그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회사의 영업을 표시하는 표지로서 국내의 블록 등 문구 제조?판매업자들이나 일반 수요자들 사이에 널리 인식 또는 알려졌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2심은 1심판결을 파기하고 양씨에게 벌금 1800만원을 선고했다.
1심은 양씨의 저작권법위반죄와 부정경쟁방지법위반죄를 실체적 경합관계로 판단했는데, 2015년 12월 두 죄의 관계를 상상적 경합관계(1개의 행위가 수개의 죄에 해당하는 경우로, 수개의 죄 중 가장 법정형이 무거운 죄로 처벌)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2심에서는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했던 일부 혐의가 유죄로 뒤집혔다.
재판에서는 '배포권 소진'을 규정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적용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저작권법 제20조(배포권) 본문은 '저작자는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을 배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조 단서는 '다만, 저작물의 원본이나 그 복제물이 해당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아 판매 등의 방법으로 거래에 제공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정하고 있다.
저작권자가 저작물 원본이나 복제물의 판매를 허락한 경우 이미 보상받을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이후에는 자유로운 유통이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이다.
2심 재판부는 양씨가 판매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이 중국에서 판매권을 위임받은 회사로부터 납품받은 진정상품이라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른바 '배포권 소진 조항'인 저작권법 제20조 단서 조항으로부터 당연히 '독점수입권자에 의해 당해 외국상품이 수입되는 경우 제3자가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진정상품을 국내 독점수입권자의 허락 없이 수입하는 행위'인 병행수입의 경우까지 저작재산권자의 권리가 소진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볼 수는 없고, 저작권법에서는 달리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규정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저작권법 제20조 단서 조항이 국내 독접수입권자가 따로 있을 때 제3자가 다른 루트로 해당 저작물을 수입해 판매하는 것까지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또 재판부는 "설령 저작권법 제20조 단서가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저작권자는 피고인이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중국 내 상품화권자로부터 수입해 국내에 이를 다시 판매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허락한 바 없다"라며 "또한 저작권자는 A사에 중국 내 상품화권만을 부여했고, A사는 B사에게 중국 대륙 지역 내 도라에몽 캐릭터를 이용한 제품 판매권을 위임했는데, 저작권자의 의사는 A사나 B사에게 중국 내 상품화권 내지 중국 대륙 지역 내 제품 판매권만을 허락하려는데 있다고 봐야 할 것이고, 반면에 저작권자는 C사에게 국내 상품화권을 부여한 만큼, 저작권자의 의사는 C사에게 국내 상품화권 내지 제품 판매권을 허락하려는데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A사나 B사가 C사와 법적 또는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에 있거나 그 밖의 사정에 의해 동일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는 이상 저작권자가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를 허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라며 "따라서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중국 내 상품화권자로부터 수입해 국내에 이를 다시 판매한 행위는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구성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재판부는 "B사는 A사로부터 중국 내에서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이용 방법 및 조건의 범위 안에서 도라에몽 캐릭터에 관한 이용허락을 받았다"라며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는 저작물 이용허락 계약에 따라 정해지므로, B사가 이용허락 계약에서 정한 판매지역을 넘어서 피고인에게 직접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판매한 행위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따라서 B사의 행위는 저작재산권자의 허락 없이 이뤄진 것으로 저작권법 제20조 단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B사가 피고인에게 판매한 도라에몽 블록 제품에 대한 저작권자의 대한민국에서의 배포권은 소진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재판부는 "원심의 이유 설시에 다소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나, 피고인이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도라에몽 블록 제품을 중국 내 상품화권자로부터 수입해 국내에 이를 다시 판매함으로써 저작권자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의 원심의 판단에는 상고이유와 같이 저작권법 제20조 단서 내지 권리소진 원칙의 적용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의 잘못이 없다"고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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