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안정이 현실 안주에 그치지 않도록 변화해야
조직의 안정인가, 혁신을 위한 조직 쇄신인가. 연말 인사 시즌만 되면 기업들은 조직의 안정과 쇄신 사이에서 고민한다.
안정, 쇄신 모두 기업 입장에서는 버릴 수 없는 선택지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안정적인 조직을 유지하면서도 변화가 필요한 부분은 과감하게 교체하는 쇄신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정과 쇄신을 동시에 끌어안기는 힘들다. 조직이 안정적이려면 합이 잘 맞는 사람들로 구성된 기존 조직에서 역량을 끌어올리는 쪽으로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기존 조직 안에서는 혁신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혁신을 위해 다 바꾸자니 역량을 끌어모아야 하는 시점에 다시 처음부터 합을 맞춰야 하는 과도기와 시행착오를 견뎌내야 하는 부작용이 생긴다.
올해 기업들은 안정과 쇄신 사이에서 특히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어떻게 꾸릴지 전략을 세우기에 어려운 환경이었다. 인플레이션과 고(高)금리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 수 없는 상황에 과거 실적 기록을 유지하는 것 조차 힘들었던 기업들이 많았다. 악화된 경영 환경에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지만 책임자를 바꾼다고 엎어진 시장 환경이 되돌아오기 힘들다는걸 누구나 안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많은 기업들이 과감한 인사 쇄신 보다는 소폭의 변화를 꾀하는데 그쳤다. 4대 그룹 중에서는 SK 정도만 과감한 선택을 예고했을뿐 대부분이 최고경영자(CEO)를 유임시키거나 다른 계열사로 전환 배치하는 수준의 인사 전략을 택했다. 그나마 1970년대생 부사장, 1980년대생 상무 등 젊은 인재의 적극적인 임원 발탁이 이뤄졌다는 점 정도를 인사 쇄신으로 꼽는 분위기다.
어려운 경영환경을 핑계로 한 연말 인사의 소극적인 변화는 성과주의 원칙을 추구하고 있는 기업들의 입장과 거리가 멀다. 정치권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고 의사 결정권을 가진자의 책임을 뒤로 하고 밑에서부터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는 조치다.
따지고 보면 기업이 어려운 경영환경을 마주하지 않았을때는 없었다. 1월 CEO들이 내놓는 신년사에 '녹록지 않은 경영 환경', '도전적인 한 해' '변화가 필요한 때'라는 말이 매번 등장하는 단골 문구다. 다음달 나올 신년사에도 유임한 CEO들은 이와 비슷한 문구들을 내놓으며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뛰어달라며 변화와 혁신에 대한 당부를 전할 것이다. 인사와 조직에는 쇄신이 빠져 있는데 변화와 혁신을 원하는 것은 모순일 수 있다.
기업은 환경이 어려울수록 안정보다는 쇄신이 필요하다. 혁신해야 살아남는 시대에 '안정'이란 단어는 현실에 안주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대기업 고위 임원도 올해 재계의 소극적인 인사 분위기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에 대해 "조직의 안정이라는 말이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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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기업 조직 문화가 팽배한 대한민국에서 인사와 조직 쇄신 없이 틀을 바꾸는 혁신이 가능할까. 어려운 환경을 핑계삼아 우리 기업들이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물음표를 던져야 할 때다.
박선미 산업IT부 차장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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