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초저출산·초고령사회 원인·영향·대책' 보고서
"韓 저출산·고령화 대응 못하면 성장-분배 큰 어려움"
정책 대응 없을시 2050년대 0% 이하 성장세 68%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인 가운데, 청년층 고용률과 한국의 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을 OECD 평균수준으로 높일 경우 출산율을 1명대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지금이라도 가족 관련 정부지출을 늘리는 등 정책적 노력을 기울인다면 출산율을 약 0.2명만큼 올릴 수 있고, 우리나라 잠재성장률도 2040년대 평균 0.1%포인트 높아질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3일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 극단적 인구구조 원인·영향·대책' 보고서에서 "저출산·고령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성장·분배 양면에서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효과적 정책적 대응이 없는 경우 2050년대에 0% 이하 성장세 확률은 68%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내년 합계출산율 0.7명…미혼율 증가가 주도
통계청의 장례인구추계에 따르면 올해 합계출산율은 0.73명, 내년에는 0.70명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초저출산은 도시국가인 홍콩을 제외하고 세계 최저로 지속기간 면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데, 특히 미혼율이 늘면서 이를 주도하고 있다. 실제 25~49세 여성의 미혼율은 1990년에는 8.0%로 매우 낮았으나 2020년도에는 32.9%로 크게 증가했다. 30대 여성의 미혼율도 2020년 기준 33.6%로 30대 여성인구의 1/3은 미혼이었다.
인구구조 고령화 역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저출산이 70%, 기대수명 연장이 30%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중은 지난해 기준 전체 인구의 17.5%이며, 2025년에는 20.3%로 고령인구비중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18년 고령사회에 진입한 지 약 7년만으로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다. 유엔(UN) 인구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령인구비중은 2046년부터 일본을 넘어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 되며, 2062년에는 홍콩을 제치고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된다.
청년층, 높은 '경쟁압력'·'불안'으로 출산 안해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구조 고령화의 근본 원인인 초저출산의 원인을 다양한 층위별로 분석한 결과 초저출산은 청년들이 느끼는 높은 '경쟁압력'과 고용·주거·양육 측면의 '불안'과 연관됐다. 한은이 갤럽에 의뢰해 전국 25~39세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을수록 희망자녀수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압력 체감도가 높은 그룹의 평균 희망자녀수는 0.73명으로 체감도가 낮은 그룹의 평균 희망자녀수 0.87명보다 0.14명이나 적었다. 또 실험을 통해 경제적 비용(주거비·교육비·의료비) 중 특히 어떤 요인이 저출산을 유발하는지 분석한 결과 '주택마련 비용에 대한 부담'이 결혼·출산 의향을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은 경제연구원 황인도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이번 연구는 결혼·출산 의향 관련 국내외 문헌 중 무작위통제실험 방법론을 최초로 적용한 연구"라며 "경쟁압력이 희망자녀수에 미치는 영향을 대표본(2000명)에서는 국내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낮은 고용률이다. 우리나라 15~29세 고용률은 지난해 46.6%로 OECD 평균 54.6%보다 크게 낮다. 대학 졸업 나이와 결혼 연령대를 고려해 25~39세 고용률도 우리나라는 75.3%로 OECD 평균인 87.4% 대비 12.1%포인트 낮다. 고용의 질도 비정규직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과거보다 저하됐다. 청년층(15~29세)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2003년 31.8%에서 지난해 41.4%로 9.6%포인트 증가했는데 국별 비교가 가능한 임시직 근로자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는 27.3%로 OECD 34개국 중 네덜란드에 이어 2번째로 높았다.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확대, 수도권집중 저출산 심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란 양질의 1차 노동시장(대기업·정규직)과 열악한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비정규직) 간 격차가 확대되고 노동이동이 단절될 상태를 의미한다. 비정규직 대비 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은 2004년 1.5배 수준에서 2023년 1.9배로 확대됐다.
또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주택가격(전세가격)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낮아지는 모습이 뚜렷했다. 시도별 합계출산율을 보면 지난해 기준 세종시의 합계출산율은 1.12명인 반면 가장 낮은 서울시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에 불과해 시도별 편차가 컸다. 황 실장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해 양질의 일자리를 향한 경쟁을 낮추고 고용불안을 덜어줘야 한다"면서 "주택가격을 안정시켜 주거불안을 낮추고 수도권 집중 완화, 입시 위주 교육을 지양해 경쟁압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지원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라는 암울한 현실에서도 정책·제도 여건과 경제·사회·문화 여건이 개선된다면 출산율이 1%대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정책 시나리오 분석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우선 한국의 청년층 고용률(15~39세, 58%)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66.6%)으로 증가하면 출산율이 0.12명 올라간다. 특히 10.3주에 불과한 한국의 육아휴직 실이용기간이 OECD 평균 수준인 61.4주로 증가할 경우 출산율이 0.1명 높아져 합계출산율이 1명대로 반등할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4%에 불과한 한국의 가족 관련 정부지출을 OECD 34개국 평균 수준인 2.2%로 높인다면 출산율이 0.06명, 한국의 실질주택가격지수(104)가 2015년 수준(100)으로 하락하면 출산율은 0.002명 더 올라간다.
韓 육아휴직 실이용기간 10.3주 vs OECD 평균 61.4주
여기에 단기간에 변화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의 도시인구집중(431.9)이 OECD 평균 수준(95.3)으로 하락하고, 혼외출산비중(2.3%)이 OECD 34개국 평균 수준으로 상승하면 출산율이 각각 0.41명, 0.16명 올라간다. 앞서 언급한 여섯가지 시나리오가 모두 달성할 경우 출산율은 현재보다 0.85명이나 올라갈 수 있게 된다.
황 연구원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가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용 못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남성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는 방안이 절실하고 직장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유로 '사용할 수 없는 직장 분위기나 문화 때문에'가 31.8%로 1순위에 꼽혔다.
보고서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에 직면한 한국이 단기 시계에서는 '적응'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봤다. 노동인력·산업구조·연금·재정 등이 소프트랜딩하도록 유도해야 하며, 심각한 노인빈곤 완화에도 힘써야 한다는 조언이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고령인구의 자산 구성에서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으로 높기 때문에 자산이 많은 계층은 주택연금 등을 통해 현금흐름을 개선하도록 유도하고, 근로 가능 계층에게는 고령자 고용 촉진, 고용 환경 개선 등을 통해 근로소득을 늘릴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출산율 0.2 상승시 2040년 잠재성장률 0.1%P↑
고령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오래 일하거나 재채용되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현재의 연공서열식 급여체계에서는 어려운 만큼 '고령자 고용촉진 기본계획'에서 밝힌 대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한 계속 고용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등 관련 예산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저소득·저자산 고령계층은 사회안전망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고 봤다. 소득 하위 20~30% 계층에 한해 선별적으로 기초연금을 인상함으로써 하위계층을 두텁게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 실장은 "효과적인 대책을 추진해 고용, 주거, 양육 여건을 개선하는 경우 출산율을 제고할 수 있다"면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통해 출산율을 약 0.2명만큼 끌어올릴 경우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은 2040년대 평균 0.1%포인트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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