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ve you' 명곡 남긴 국민가수…26세 나이로 요절
58번째 생일에 팬들 기념비 방문 이어져
"I love you. 사랑한다는 이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네요."
겨울에 꼭 듣고 싶어지는 노래 가수 포지션의 'I love you', 이 노래는 일본 가수 고(故) 오자키 유타카가 부른 같은 제목의 곡을 한국어 버전으로 리메이크한 것인데요. 가사는 다르지만 같은 멜로디로 한일 양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이번 주 일본에서는 사람들이 잠시 이 노래로 추억에 젖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곡을 부른 오자키 유타카가 지난달 29일 58번째 생일을 맞았기 때문인데요. 1992년 26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떠나간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수많은 팬의 발걸음이 이어졌고, 고인을 기리는 보도도 이어졌습니다. NHK는 그의 5살 연상 변호사 형과도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를 추모했습니다.
오늘은 많은 명곡을 남기고 어린 나이에 떠나간 국민가수, 오자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자키는 1965년 11월 29일 도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육상 자위관이었고, 형이 한 명 있었죠. 학교에 잘 적응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 가는 척을 하다 다시 집에 몰래 들어와 기타를 독학으로 연주하는 등 음악에 대한 재능은 어느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는 밴드를 결성했는데, 축제 때는 다른 중학교에서도 오자키를 보러 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명문고등학교인 아오야마가쿠인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형의 인터뷰에 따르면 고등학교 때는 흡연, 패싸움, 가출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합니다. 정학 처분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를 즐기며 기타를 잡고 노래만 불렀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오자키는 스스로 연주한 곡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연예기획사로 들고 가는데요. 오디션에 바로 합격했습니다. 당시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상태라 인생이 암울한 시기였는데, 노래에 그 답답함을 담아냈다고 하네요. 그리고 1983년 18살이 되자마자 '17세의 지도'로 데뷔를 하고,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릅니다. 우리가 아는 'I love you'는 원래 이 데뷔 앨범 수록곡이었는데요.
이후 많은 앨범으로 대히트를 치고, 1991년 'I love you'만 따로 11번째 싱글앨범으로 발매합니다. 작사, 작곡, 프로듀싱도 전부 오자키가 맡았는데요. 원래는 데뷔 앨범을 만들 당시 곡이 부족해 프로듀서가 "곡이 부족하니 발라드 하나만 더 써와라"라고 했고, 이 말에 오자키가 "혹시 I love you~라는 느낌의 곡은 어떠세요"라고 흥얼거렸고, 좋다는 말을 듣자 이틀 만에 쓴 곡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는 오리콘 차트에서는 최고 기록 5위에 그쳤지만, 앨범은 48만4000장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죠.
한 시대를 풍미한 오자키는 20세 이후 방황의 시기를 거칩니다. 갑자기 무기한 활동 중지를 선언하고, 각성제를 과다 복용해 체포되기도 하죠. 일반인 여성과 결혼하고 아이도 태어나 잠깐 안정되는 듯 하지만, 소속사와도 문제가 생기고, 같이 활동해온 밴드 멤버들과도 불화가 생깁니다. 점점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죠.
그리고 1992년 26살의 나이로 그는 돌연사합니다. 공식적인 사인은 폐수종이라고 하지만, 아직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아있는데요. 그가 자택 인근에서 멍투성이로 쓰러진 채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했는데요. 형의 인터뷰에 따르면 마치 술에 취해있는 것처럼 보였고, 갑자기 주먹을 쥐어 보이며 "이길 수 있을까?"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형은 "이길 수 있어"라고 대답했는데, 이것을 마지막 대화로 결국 숨을 거뒀죠. 갑작스러운 소식에 일본 전체가 들썩였고, 그의 장례식과 추모식에는 4만명의 팬이 참석해 그를 배웅했습니다.
살아있었다면 58번째 생일을 맞았을 오자키. 도쿄 시부야 한 빌딩에는 오자키 유타카 기념비가 있습니다. 이번 생일을 맞아 점심에 잠깐 시간을 내 방문한 직장인들, 먼 곳에서 찾아온 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형의 인터뷰는 다시 한번 팬들의 심금을 울렸는데요. 이제 사이타마현 변호사협회장까지 맡게 된 그는 "사랑과 희망, 마음속에 있는 모순 등을 솔직하게 전달한 오자키의 모습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내가 열심히 사는 것은 곧 오자키가 지금 살아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느냐.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게 할 일을 해나가겠다"고 NHK에 전했습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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