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동네 지인 소개로 첫 만남
멍거, 1978년 버핏의 버크셔에 합류
버핏 "생각 비슷해"…멍거 "서로 존중"
'투자의 귀재'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워런 버핏의 곁에는 늘 찰리 멍거가 있었다. 매해 열리는 연례 주주총회에 나란히 앉아 투자자들에게 버크셔해서웨이의 투자 방식과 자신의 투자 철학을 알려왔다. 2002년 총회에서 버핏은 옆에 앉은 멍거를 두고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파트너가 있다는 건 아주 좋다"고 말했다. 멍거는 "그런 일은 자주 벌어지지 않는다"고 유쾌하게 답했다. 현장에 있던 주주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멍거 부회장과 버핏 회장은 7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하며 우정을 쌓았고 투자 회사인 버크셔를 이끄는 최고의 사업 파트너였다. 28일(현지시간) 멍거 부회장이 향년 99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버핏 회장은 "멍거의 영감과 지혜, 참여가 없었더라면 버크셔는 지금과 같은 지위를 결코 쌓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애도했다.
버핏 회장과 멍거 부회장이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시점은 1959년이다. CNBC방송 등에 따르면 30대 중반이었던 멍거 부회장은 당시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이자 투자 관리인으로 명성을 쌓은 상태였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두고 일하던 중 멍거의 부친이 사망했고 장례식을 치르고 부친의 재산을 정리하기 위해 오마하에 돌아온 그를 동네 의사인 에드윈 데이비드가 버핏에게 소개해줬다.
버핏은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멍거 부회장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그 자리가 유쾌했다고 회상했다. 식사 도중 자신이 한 농담에 바닥에 누워 깔깔대고 웃을 정도로 멍거를 보며 버핏은 큰 호감을 느끼고 한순간에 빠져들었다.
버핏은 2021년 CNBC방송에서 "이런 남자를 다른 데서 찾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면서 "찰리는 내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고 그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걸 즉시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멍거도 겸손한 버핏의 모습에 빠졌다고 말했다.
멍거 부회장은 1924년생, 버핏 회장은 1930년생으로 6살 차이다. 둘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빠르게 우정을 쌓아나갔다. 버핏은 2016년 한 방송에서 "우리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우리 둘 다 아버지를 존경했다"고 말했다. 둘 다 어린 시절 버핏의 조부가 운영하던 식료품점에서 일한 경험이 있지만, 이때는 만난 적은 없다고 한다.
성인이 된 뒤 고향에서 처음 개인적인 친분은 쌓은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업 파트너가 된 건 그로부터 10년 이상 지난 1978년이었다. 그전까지 1960년대에 멍거 부회장은 캘리포니아 로펌에서 일하다가 자신의 투자 회사를 설립해 운영했다.
하지만 멍거는 1973년과 1974년 자신의 투자 회사에서 30%대의 큰 손실률을 기록했다. 멍거는 "(버핏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을 갖고 있다는 걸 아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하지만 그는 결국 내가 내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고 회상했다.
버핏은 1962년부터 버크셔의 지분을 매입해 1965년 회사를 경영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멍거의 조언을 꽤 자주 들었다. 이 시기 버핏은 부실기업을 값싼 가격에 인수해 이후 매각하는 식의 투자를 했다. 멍거가 여기에 지속가능한 회사를 만들려면 탄탄한 브랜드를 갖춘 회사를 사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버핏은 이러한 멍거의 조언이 지금 버크셔가 투자하는 방식의 기초가 됐다고 소개한다. 버핏은 "멍거는 건축가(architect)였고 나는 종합 건설업자(general contractor)다"라고 표현했다.
1978년 멍거 부회장의 합류 이후 버크셔는 빠르게 성장했다. 1965년부터 지난해까지 버크셔는 연평균 2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현재 보험사인 게이코, BNSF 철도회사 등을 보유하고 있고 코카콜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IBM, 웰스파고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직원 수는 37만명이 넘었다.
많은 글로벌 기업인들이 함께 동업하다가도 쉽사리 헤어지곤 하지만, 둘은 40년 이상 사업 파트너로 돈독하게 지내왔다. 각종 이슈에 대해 함께 토론하곤 했지만, 크게 다툼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 비결에 대해 버핏은 "생각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유머나 안타까움 등을 느끼는 지점이 비슷해 크게 충돌할 일이 없다는 의미다. 멍거는 "모든 일에 다 똑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를 상당히 존중한다"고 말했다.
버핏은 지난해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멍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찰리와 저는 거의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사안을 설명하려면 한 페이지 정도는 필요한 저와 달리 그(멍거)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죠. 게다가 그의 설명은 항상 더 이성적이고 예술적입니다. 누군가는 더 직설적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멍거 부회장의 사망에도 버크셔의 경영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망했다. 버핏과 멍거는 고령인 자신들을 대신해 젊은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2021년 버크셔의 부회장이자 비보험 사업 총괄인 그렉 아벨(61)을 차기 버크셔 최고경영자(CEO)로 낙점해뒀다. 멍거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벨 부회장은 버핏과 더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으로 예상되며 버핏이 경영에서 손을 떼면 그를 이어 회사를 이끌 것으로 보인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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