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도로 진행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간 '메가 딜(초대형 합의)'이 미 의회 반발이라는 새로운 난관이 봉착했다. 내년 재선을 노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외교 성과로 과시하기 위해 추진 중인 중동 외교 재편의 꿈도 멀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민주당 상원의원 그룹은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사우디·이스라엘 국교 정상화 협상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서한을 백악관에 전달했다. 상원의원들은 서한에서 "미국의 상당한 양보를 요구하는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사우디와 구속력 있는 방위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협상이 미국의 국가 안보 우선순위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번 서한은 바이든 대통령의 측근들이 사우디·이스라엘 국교 정상화 협상 진행을 위해 지난주 사우디를 방문한 직후 나왔다. 이날 미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중동 담당 수석 보좌관인 브렛 맥거크와 에너지·인프라 담당 수석 고문인 아모스 호스타인이 지난주 사우디를 방문해 사우디·이스라엘 간 메가 딜을 위한 회담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악시오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달 바이든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회담 직후 추진력을 얻는 듯했지만, 사우디가 제시하는 협상 포인트 증가 등으로 회담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 의회까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외신들은 미국 주도로 추진 중인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의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 협정이 험난한 정치적 장애물에 맞닥뜨렸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한 언론은 "미 민주당은 양국 간 수교 조건으로 미국이 운영하는 민간 핵 프로그램 운영을 사우디에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에 상당한 우려를 드러냈다"며 "이 방안이 실현되려면 의회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국교 정상화의 대가로 안보 보장, 핵 구축 지원, 무기 판매 등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의 기존 대외정책과는 정면 대치 되는 요구를 이어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내세울 수 있는 잠재적 외교 성과로 주목하고 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공식 외교 관계가 복원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IMEC)'이 속도를 내면서 대선 가도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중동 외교 재편의 핵심축인 IMEC는 미국 등의 주도로 인도·중동·유럽을 잇는 무역로 건설 계획이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 고리인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수교가 필수적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었지만,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에 사우디 왕세자가 개입된 것이 알려지면서 양국 관계는 냉랭해졌다. 이후 인권 중심 가치 외교를 내세운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은 빈살만 왕세자를 '국제 왕따'로 만들겠다고 천명하면서 양국 관계는 더 악화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사우디에 먼저 손을 내밀면서 양국 관계는 정상화될 기회를 갖게 됐다. 더힐은 "바이든 행정부가 오랜 앙숙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한다고 하더라도, 의회 승인이라는 난관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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