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프리미엄 TV 출시 봇물
2004년 8000만원 상당 LG전자 '금장PDP TV'가 시장 열어
2013년 이후 본격적인 억대 TV 경쟁
삼성전자와 LG전자가 4000만원이 넘는 초고가 TV 신제품을 연달아 출시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TV 수요가 부진해지자 대형, 프리미엄 제품으로 수익성 회복을 꾀하는 모양새다. 양사는 초고가 TV의 구체적인 판매 수치는 함구하고 있지만, 고급 TV를 원하는 '슈퍼 리치(초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구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회사의 기술력을 보여준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어 소비자뿐 아니라 업계 관계자들도 초고가 TV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14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98형 네오(Neo) QLED 8K(QNC990), 무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인 'LG 시그니처 올레드M'을 국내에 출시했다. 크기가 초대형인 만큼 가격도 초고가다. 삼성전자의 신제품 출고가는 4990만원이다. 전년에 출시했던 같은 라인의 4K 모델 출고가인 4500만원보다 500만원 이상 높은 가격이다. LG전자 신제품의 국내 출하가는 4390만원이다. 웬만한 자동차보다 비싼 제품들이다.
'초고가 TV'란 개념이 시장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초고가 TV는 정체기에 빠진 TV 시장을 견인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역대 초고가 TV는 어떤 제품이 있었을까. TV 가격을 파격적인 고가에 출시한 첫 제품은 2004년 LG전자의 71인치 금장PDP TV다. 가격은 약 8000만원이었다. TV 베젤을 비롯해 홈씨어터 패키지 제품을 24k 골드로 장식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출시와 동시에 중동 지역에서 300여 대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으며, 페루 대통령궁에 설치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요 국가 왕실에 납품돼 '왕실TV'로도 불렸다. 당시 65형 PDP TV가 1950만원에 팔렸음을 감안하면 8000만원이란 가격은 파격이었다. 웬만한 전셋값에 준한다는 평가를 받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TV였다.
다음 해 삼성전자는 80인치 PDP TV를 내놓고 가격표에 1억3000만원을 적어넣었다. TV와 장식장만 사면 1억3000만원, 홈시어터 풀 패키지를 포함하면 1억5000만원의 가격이었다. 무형문화재 손대현 선생의 옻칠 수공예를 디자인에 담았고 제품에 고객의 서명까지 각인해줬다. TV가 억대 가격에 팔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다만, 큰 크기에 영국 해롯백화점 등 일부 대형 백화점을 중심으로만 선별적으로 전시 및 판매가 이뤄졌다. 중동 부호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여전했다.
두 회사가 '억' 소리 나는 TV로 자존심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2013년 말 이후다. PDP가 LCD로 넘어가는 2012년 업체들은 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1억원이 넘는 100인치대 TV를 선보인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3년 1억6000만원짜리 110인치 UHD 평판 TV를 전격 출시했다. 이에 맞서 LG전자는 2014년 1억2000만원짜리 105인치 커브드 UHD TV를 내놨다. 이 또한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되는 용도로 개발된 건 아니었다. 주문 제작 형식으로 구입할 수는 있었지만 전시용에 가까웠다. 연간 판매량도 100대를 넘지 않았다. 그마저도 중동이나 중국 등지에서 일부 판매가 이뤄졌다.
하지만 프리미엄에 대한 수요가 꾸준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 1966년 금성사(현 LG전자)가 내놓은 국내 최초의 흑백TV 'VD-191'의 당시 소비자 가격은 6만8000원이었다. 당시 80㎏ 쌀 한 가마니 가격이 2500원, 직장인 월평균 소득이 약 1만2000원이었다. 직장인이 5개월 동안 한 푼도 쓰지 않아야 TV 1대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에도 VD-191은 추첨을 통해 팔아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업체들이 일반 소비자들도 구입할 수 있는 양산형 초고가 제품을 내놓으면서 초고가 TV 시장의 문턱이 좀 더 낮아졌다는 평가다. 초대형·초고화질 트렌드에 힘입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초고가 TV는 높은 판매량을 보이지 않더라도 상징성과 간접홍보가 큰 중요한 제품"이라며 "중국 업체들과 차별화되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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