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 허가 맞아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 도입
환자 동의·주치의 평가·IRB 승인 거쳐야
외국인 환자도 국내 처방 시 혜택 적용
유한양행의 3세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국내 환자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된다.
유한양행은 10일 오후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유한양행 R&D 및 사회공헌 기자 간담회'에서 렉라자의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 승인을 맞아 국내 환자들에게 렉라자를 무상으로 공급하는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P, Early Access Program)'을 시행한다는 방침을 공개했다. 현재 EAP 진행을 희망하는 각 의료기관과 협의를 진행 중으로 이달 중으로 첫 혜택 환자가 나올 전망이다. EAP 적용 대상이 되면 환자는 현재 2차 치료 요법 보험 약가 기준 연간 7550만원의 약값인 렉라자를 무료로 지원받게 된다.
렉라자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에 변이가 생긴 비소세포폐암 2·3차 치료로 한정됐던 적응증을 지난달 30일 1차 치료까지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항암 치료는 2·3차 치료제로만 승인받을 경우 앞서 최초 치료인 1차 치료에서 환자가 완치 또는 사망한다면 약이 쓰일 기회를 아예 가질 수도 없는 만큼 1차 치료의 수요가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렉라자와 같은 세대인 3세대 EGFR 치료제 중 국내에서 1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약은 없는 상태다. 앞서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오시머티닙)'가 2018년 식약처 승인을 받았지만 급여화의 첫 고비인 암질환심의위원회를 계속 통과하지 못하다가 지난 3월 무려 5수 만에야 첫 문턱을 넘었다. 아직 약가 협상 등의 절차가 남아있어 일러야 올해 안으로 급여화가 가능할 전망이다.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도 이번 EAP 사업의 배경에 대해 "폐암으로 고통받는 분 중 원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빨리 3세대 EGFR 티로신 키나아제 억제제(TKI) 약물인 렉라자를 복용하게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회사 내부에서 많았다"며 "1차 치료제 허가와 동시에 병원 내 심사를 거쳐 무상으로 약품을 공급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됐다"고 전했다.
유한양행의 정신에 따른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조 사장은 "유한양행은 '가장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유일한 박사의 창업 정신을 지켜오고 있다"며 "렉라자는 회사의 노력과 투자뿐만 아니라 많은 분의 신뢰로 빚어진 산물인 만큼 수익의 일정 부분을 폐암 치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사회 환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무제한 무료 공급' 내걸고 진행되는 EAP…해외·대상 약물 확대 가능성도
EAP는 렉라자의 1차 적응증에 해당하는 환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하고, 담당 주치의의 평가 및 의료기관별 생명윤리위원회(IRB) 검토·승인을 받았다면 환자 수 및 기관 수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진행된다. 국내에서 매년 3만명 정도의 폐암 환자가 신규 발생하고, 이 중 EGFR 변이가 있는 환자가 30~40% 수준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연간 최대 1만명 정도가 대상이 된다. 또한 외국인 환자더라도 국내에서 진료·처방이 이뤄진 환자라면 EAP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유한양행 측은 설명했다.
이달 중 첫 환자 지원이 이뤄질 전망인 가운데 이번 EAP 사업은 렉라자의 1차 치료 요법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시점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임효영 유한양행 임상의학부문장(부사장)은 "한국과 같이 '국민개보험(전 국민 대상 공적 보험 제도)'이 시행되는 나라에서는 허가뿐만 아니라 이후 급여 고시까지 돼야 실질적인 약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며 "렉라자 같은 혁신 의약품이 진료 현장에서 처방이 가능해질 때까지 동정적 목적으로 약물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부사장은 또한 "경쟁 약물인 타그리소의 급여화가 먼저 이뤄지더라도 EAP는 이어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유한양행은 EAP 프로그램을 해외 또는 다른 의약품까지 확대할 계획도 내비쳤다. 조 사장은 현재 렉라자의 글로벌 판권이 얀센(존슨앤드존슨 자회사)에 수출된 만큼 "유한양행만의 생각"이라면서도 "돈이 없어 처방이 어려운 나라에서는 렉라자를 단독으로 쓸 수 있도록 얀센과 협의하면 어떨까 싶다"며 다른 항암제에 대해서도 "유한양행의 창업 취지가 좋은 약을 만들어 국가에 도움이 되고 수익은 환원한다는 것인 만큼 또 다른 기회가 나온다면 EAP를 충분히 시행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제2·제3의 렉라자 만들 것"…후속 항암 파이프라인도 공개
한편 이날 간담회에서는 오세웅 유한양행 중앙연구소장(부사장)의 항암 파이프라인 관련 발표도 있었다. 현재 유한양행은 렉라자를 포함해 11개 정도의 항암 파이프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가장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은 'YH32367'과 'YH42946'이다.
'ABL105'로 에이비엘바이오가 개발해오던 이중항체 항암제를 2018년 도입한 YH32367은 인간 표피 성장인자 2형(HER2)가 발현된 암에 대해 특이적으로 결합해 체내 면역세포를 활성화하는 4-1BB를 자극해 면역세포의 항암 작용을 높이는 기전을 가진 항암제 후보물질이다. 오세웅 소장은 "연구에서 암을 한 번 더 이식했을 때도 동일한 암에 대해 암이 발현되지 않았다"며 "암세포를 우리 면역 세포가 기억하고, 그 암세포만을 공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간 독성 문제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YH32367은 현재 한국에서 임상 1·2상 투약을 진행하고 있고, 호주에서도 임상이 진행 중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5월 제이인츠바이오의 'JIN-A04'를 기술 도입한 YH42946은 비소세포폐암의 HER2 유전자를 타깃한다. 오 소장은 "현재 폐암에서 HER2 엑손(exon)20 변이는 미개척 분야"라며 "현재까지 개발 성공 약물이 없는 만큼 표적에 적합한 약물을 발굴해 임상을 진행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내년 초 임상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오 소장은 이외에도 4-1BB·EGFR 이중항체인 'YH32364', 티짓(TIGHT)·PD-(L)1 이중항체인 'YH41723' 등의 파이프라인을 함께 소개했다. 그는 "제2·제3의 렉라자를 만들고자 한다"며 "▲정밀의학 기반 환자 맞춤형 표적 항암제 ▲이중표적 차세대 면역항암제 ▲융합플랫폼 기술 기반 혁신 항암제 등을 개발해 환자 중심의 미래 항암치료제 개발을 통한 사회 공헌을 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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