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컨설턴트→창업가,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
“세 번의 전환은 한계 깨닫고 인정하는 과정”
내 안의 악동 다스리고 이해하는 '나다움' 강조
심리케어 '마인들링' 피플테크 선도기업 포부
"저는 시스템 밖의 세상이 항상 궁금했어요. 사람을 돕고 싶어서 의사가 됐는데 병원 안에서의 노력만으로는 1%도 해결하기 어렵겠더라고요. 좀 더 임팩트 있게 해결할 방법을 찾고 싶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컨설턴트를 거쳐 창업가로 직업을 바꾼 문우리 포티파이 대표는 자신의 인생 모토를 '나다움' 추구라고 말했다. 화려한 이력만 보면 '엄친딸'처럼 보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경상도 사투리로 '하고재비'다. 관련 없어 보이는 점들이 연결되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이 된다는 게 문 대표의 소신이다.
문 대표는 사람과 사회에 관심이 많은 의대생이었다. 학교 밖 세상이 궁금해 아르바이트나 여행,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인턴 등을 경험하며 의학 기술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목격하며 자연스레 보건정책에 관심을 가졌다. 졸업 후 존스홉킨스 대학원에서 보건학과 경영학을 전공하다 컨설턴트로 맥킨지에 입사했다.
맥킨지는 직장 경력도 없는 의대생을 왜 컨설턴트로 뽑았을까. 문 대표는 "통상 면접을 4~6회 보는데 나는 7번이나 면접을 봤다"며 "면접 후 어떻게 평가한 것인지 물었다"고 말했다. "떨어져도 좋으니 그렇게 평가한 이유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오히려 면접관이 근성을 높이 평가해줬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해당 직급에서 최연소 입사자다. 면접관들은 문 대표를 '장관감'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평가가 엄격한 컨설팅 업계에서 첫 직장생활은 가혹했다.
"삼성이나 구글 등에서 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분들과 같은 레벨의 경력으로 입사해 동일한 잣대로 평가를 받았어요.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옷 입는 것, 업무 대화 같은 비즈니스 매너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컨설턴트로 보낸 초반 1년은 정말 힘들었죠. 강남역 한복판에서 펑펑 운 적도 있었어요. 다행히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에 턴어라운드 할 수 있었죠."
컨설턴트 경험은 창업으로 이어진 중요한 '점'이다. 문 대표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어떻게 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인사가 만사'라고 여기기 때문에 사람을 잘 이해하면 거기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20대에 세상을 최대한 경험했고 30대는 전문성을 쌓는 시간이라고 생각해 풀고 싶은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쌓기 위해 정신과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세 번의 전직 과정에서 문 대표는 의사와 컨설턴트, CEO에게 요구하는 자질이 다르다는 점을 여실히 깨달았다. 의사는 전문성이 중요하고 컨설턴트는 회사가 원하는 결과를 내면 되지만 스타트업 대표는 영업, PR, HR(인사), 재무 등 전방위적으로 관리해야 했다. 문 대표는 "전환하는 과정은 한계를 깨닫고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특히 리더는 사방에서 당기듯 다방면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남편이 나에게 평생 진로고민을 한다는 말을 하는데, 궁극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정답은 없다"며 "그때 마다 주어지는 길을 가다 보면 어딘가에 도달한다. 그 경험들은 모두 다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문 대표는 '나다움'을 이야기했다. 내 안의 악동을 다스리면서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 대표는 "나도, 타인도, 각자의 다름을 인정해야 모두가 나다움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포티파이는 '나다움'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 대표는 지난 5월 주얼리 기업인 까르띠에가 주최한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에서 동아시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과학에 기반한 서비스와 사회적 임팩트, 확장 가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인들링'은 내 안의 악동을 유형별로 분류해 진단하고, 조언하는 심리 케어 서비스다. 개인별로 심리를 진단하고 단계별로 처방법을 알려준다. 심리상담이나 병원이 아닌 제3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마인들링에서 자신의 성향을 체크하면 네 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알려준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엄격이, 미움받기 싫어하는 물렁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버럭이, 불안감이 많은 콩콩이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문 대표는 '엄격이'에 가깝다. 조직에서 활용하는 심리 기반 커리어 진단검사 '모카'는 조직에서 개인의 성향과 비전을 토대로 나에게 맞는 직무나 조직문화를 알려주고, 개인이 관계와 성과 중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도 점수로 보여준다.
2030 여성 직장인들이 마인들링을 주로 이용한다. 문 대표는 "2030 여성들은 호르몬의 변화가 많고 사회적으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 위치에 있다"며 "이뤄야 할 게 많고 홀로서기도 해야 하는 전환의 시기이고 자신에 대해서 고민이 많고, 심리적 고충을 공유하거나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도 강할 때"라고 설명했다.
문 대표는 여러 차례 커리어 전환을 거치면서 30대를 보냈다. 여성 창업가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다양하고 많은 편견과 마주한다. 문 대표는 "여성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투자받을 때 가치를 낮게 평가하려 하거나 조건을 거는 등 제약이 있고, 만나지 않고 소통하면 '여자였냐'는 반응을 볼 때 편견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느낀다"고 토로했다.
7세 아들을 둔 엄마로서도 아쉬움이 있다. 가족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엄마로서 해주고 싶은 역할을 해내지 못할 때가 특히 그렇다. 문 대표는 "아이에게는 엄마는 일을 하고, 회사에서는 대장이고, 훌륭한 일을 해야 해서 바쁘니 도와달라고 이야기하곤 한다"며 "가족의 지지가 없었다면 두 가지를 병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엄마 아빠의 역할이 동등해지는, 이것이 더 당연해지는 세상이 와야 한 다"고 덧붙였다.
문 대표는 10년 후 포티파이를 '피플테크'를 이끄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지금은 개인의 독창성이 빛을 발해야 하는 시대로,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같은 기술을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곳에 쓰고 싶다"라며 "피플테크 시장을 개척해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나다움을 발휘하는 기술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우리 대표는
경북 청도 출생으로 대구과학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의학과 졸업 후 존스홉킨스대 경영학·보건학 석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의학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맥킨지에 컨설턴트로 입사해 3년가량 마케팅, 전략, 재무 등 다양한 비즈니스를 경험했다. 2015년 서울대병원 신경정신의학과에서 레지던트로, 2019년부터 전문의로 근무했다. 2020년 7월 포티파이를 창업해 마인드케어 솔루션 '마인들링'을 서비스하고 있다. 올해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 16회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에서 문 대표는 동아시아 1위에 선정됐다.
한진주 기자 truepear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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