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기업 문화 개선"
본업 외 접점 늘려 변화 대응 인재 양성
최근 일본 기업 사이에서는 '직원 부업' 바람이 불고 있다. 기존에 직원들의 부업활동을 금지해오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아예 기업이 먼저 나서서 부업활동을 장려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탈피하고 본업 외의 영업활동과 점점을 늘려 다양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 양성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NHK에 따르면 일본의 생활용품 제조기업인 라이온은 3년 전부터 직원의 부업을 전격 허용했다. 이전에는 부업을 원하는 사람은 회사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면, 지금은 부업을 한다고 신고만 하면 임직원 누구나 부업을 할 수 있다. 신고제를 도입한 뒤 부업을 하는 직원은 꾸준히 증가해 현재 이 기업에는 180여명의 직원이 부업에 종사하고 있다. 연령대도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라이온은 부업에 관심이 있는 직원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부업 희망자를 대상으로 일본 내각부가 추진하는 지방 중소기업과의 인재 매칭 사업을 안내하기도 하고, 사내 노동조합이 여는 부업 경험자와의 좌담회에도 협조하고 있다.
코이케 요코 라이온 인사 집행임원은 부업을 허용한 계기에 대해 "획일화된 조직이 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컸다"고 밝혔다. 그는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직원들이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보면 개인이 알게 모르게 암묵적 규칙에 매여 획일화돼 버린다. 사회가 변하는 상황에서 직원 개개인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면 속도감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코이케 임원은 그러면서 "부업을 허가해 생기는 인재 유출의 위험보다, 외부를 모르는데서 오는 단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달 라이온 본사에서 진행한 신규 사업에서 부업 종사자가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신규 사업 개발 부서에서 기획을 담당하는 입사 4년차 직원이, 웹 디자인 부업 경험을 살려 애플리케이션(앱) 디자인과 설계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해당 직원은 "지금까지는 회사의 일원이었을 뿐이었는데, 부업을 하면서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이제는 회사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파트너"라고 전했다. NHK는 "외부와의 접점을 늘려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인재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인재육성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NHK에 따르면 부업을 허용하는 일본 기업은 지난 10년 간 2배로 증가했다. 2017년 일본 정부가 부업과 겸업을 허용하는 조항을 만든 이후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 자국 기업 중 50% 이상이 부업을 허용하고 있으며, '허용 예정'인 곳을 합치면 70%에 달한다.
물론 기업도 부업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노무 이슈를 우려해 본업과 부업이 양립할 수 있는 사내 규칙 마련에 힘쓰고 있다. 라이온의 경우 입사 후 2년간은 부업을 할 수 없으며, 이후 부업을 할 경우 노동시간을 주 20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아예 ‘부업 리스크 진단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생겼다. 부업 희망자가 부업을 하고 싶은 회사의 정보나 업무 내용을 입력하면 과거의 재판 사례 등을 모은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본업에 미칠 수 있는 리스크를 진단해주는 시스템이다. 위험이 높다고 판별될 경우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조언을 받고 협의를 거치게 된다.
일본 인적자원 기업 리쿠르트의 후지이 카오루 HR 총괄편집장은 “야근을 전제로 한 기준의 근무 방식으로는 직원이 부업을 갖기 어렵다. 본업의 업무 설계를 명확하게 해 필요한 시간이나 스킬을 최적화할 필요가 있다”며 “경력 형성을 개인에게만 맡기는 것 보다 기업과 개인이 함께 발을 맞춰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NHK는 “일본은 지금까지 사원 한 명이 자신의 경력을 한 회사에 일임하고, 기업이 정년까지 챙겨주는 사회였다”며 “부업을 둘러싼 기업의 움직임을 통해 기업과 사원이 (서로에 의존하는) 긴밀한 관계에서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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